2026년 0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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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시니어의 자율성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

일상이 곧 디지털 의식(儀式)이 된 시대

오늘날의 일상은 작은 화면 하나를 통과하지 않고는 좀처럼 굴러가지 않습니다. 병원 진료 예약, 은행 거래, 행정 민원, 멀리 있는 가족과의 안부 인사까지 디지털은 이미 선택이 아니라 매일 치러야 하는 의식(儀式)에 가까운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세대가 같은 속도로 이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닙니다. 적절한 안내와 동행이 부재할 때,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환경은 시니어에게 좁고 가파른 벽으로 작용합니다.

스페인 국립연구위원회(Consejo Superior de Investigaciones Científicas, CSIC)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디지털 격차는 분명히 줄어들었습니다. 65세에서 75세 인구 가운데 약 96퍼센트가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85퍼센트가 인터넷을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연구진은 단순 사용을 넘어 안전하고 능숙하게 기술을 다루는 단계에서 새로운 장벽이 존재한다고 진단하며, 이를 2세대 디지털 격차(second digital divide)로 명명했습니다. 기술의 장벽이 곧 사회적 장벽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이 개념의 요체입니다.

민관과 유럽연합이 함께 만든 동행의 구조

이러한 진단 위에서 주목할 만한 정책 사례가 스페인 통신기업 오렌지(Orange)의 ‘연결된 시니어(Mayores Conectados)’ 프로그램입니다. 이 사업은 스페인 디지털전환및공공기능부 산하 공공기관 레드닷이에스(Red.es)가 주관하는 ‘제네라시온 디(Generación D)’ 사업의 한 축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시니어와 장애인, 취약계층 디지털 교육을 위해 배정된 총 예산은 4,500만 유로(약 781억 원)에 이르며, 재원은 유럽연합의 넥스트 제너레이션(Next Generation) 기금에서 조달됩니다. 정부와 민간 기업, 그리고 국제 기금이 역할을 분담한 전형적 동행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수강생의 속도에 맞춘 대면 교육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강의실에 모여 진행되는 대면 교육이라는 점입니다. 강사는 수강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진행하며, 다루는 내용은 스마트폰 기본 조작부터 안전한 인터넷 검색, 행정 민원 처리, 금융 사기(financial fraud) 식별, 인공지능 활용까지 일상에 곧바로 쓰이는 실용 주제로 구성됩니다. 운영 주체인 마스오렌지(MasOrange) 측은 시니어가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자율성을 회복하는 데 사업의 본질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기술 전수가 아니라 자존감과 연결의 회복에 초점이 놓여 있는 셈입니다.

성과는 수치로도 뒷받침됩니다. 스페인 전역에서 이미 약 1만 1,000명이 수료했으며, 운영된 강좌는 1,521개에 이릅니다. 사업이 종료되는 2026년 6월 30일 이전에 수료자 1만 2,000명 돌파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평균 수강 연령은 73.67세이며, 수강생의 약 64퍼센트가 여성 시니어입니다. 안달루시아(Andalucía)와 카스티야-라 만차(Castilla-La Mancha) 지역의 참여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특히 ‘인공지능과 대화하기’ 강좌의 평균 연령이 71.48세로 전체 강좌 중 가장 낮았다는 사실은, 가장 새로운 기술 영역에 오히려 가장 적극적인 도전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수강생들의 변화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80대 펠리페 푸엔테스(Felipe Puentes)씨는 라디오 애플리케이션 사용을 계기로 잃었던 자율성을 일부 회복했다고 전했으며, 83세 니에베스 차콘(Nieves Chacón)씨는 자녀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사진과 메시지를 보내게 되면서 자존감과 사회적 관계까지 함께 회복했다고 밝혔습니다. 핵심은 결국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의 연결입니다.

한국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

한국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이 사례가 주는 함의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 역시 행정·금융·의료 서비스가 빠르게 비대면 디지털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으나, 시니어 세대를 위한 체계적 교육은 여전히 산발적입니다. 일회성 강좌나 동영상 안내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고 같은 자리에서 함께 익히는 대면 교육 구조야말로 시니어의 자율성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리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점을 스페인 사례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여성 시니어의 참여율이 높다는 사실은, 그간 가정 안팎에서 디지털 격차를 가장 크게 체감해 온 집단이 누구였는지를 새삼 환기시켜 줍니다.

자율성 회복이 곧 사회 안전망입니다

디지털 역량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자율성과 존엄의 문제입니다. 스스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감각은 곧 자존감으로 이어지고, 가족과 사회와의 연결을 회복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정부와 민간 기업, 국제 기금이 역할을 분담한 스페인의 사례는, 시니어 정책이 시혜가 아니라 사회 안전망의 일부로 설계되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시니어 세대의 경험과 지혜는 사회의 안정적 토대입니다. 이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돕는 일은 곧 사회 전체의 균형과 질서를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변화의 속도에 압도되기보다, 명확한 기준과 절차를 갖춘 동행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일. 한국 사회 또한 이제 본격적으로 그 답을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