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가 특정 문화를 낡고 부도덕한 것으로 규정하고 법과 예산의 힘으로 지우려 할 때, 그 시도는 과연 뜻대로 이루어질까요. 최근 스페인에서 벌어지는 투우(鬪牛) 논쟁은 이 오래된 물음에 흥미로운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동물 학대라는 비판 속에 사양길로 접어드는 듯했던 투우가, 정작 그것을 없애려는 움직임이 거세질수록 오히려 젊은 세대의 열광 속에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숫자가 보여주는 반전
독일의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이 지난 7월 9일 마드리드발로 전한 보도에 따르면, 스페인 투우는 통계적으로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스페인 투우 주최자 연합(ANOET)의 집계로 지난 시즌 전국의 투우 행사는 2만 1,569건에 이르러 전년보다 619건이 늘었고, 2024년 유료 관객은 620만 명에 달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관객 구성입니다. 전체 관객 네 명 가운데 한 명꼴인 25%가 15세에서 24세 사이의 청년층이었습니다. 수도 마드리드의 라스 벤타스 경기장은 한 축제 기간에만 열아홉 차례나 매진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 흐름을 가장 곤혹스럽게 지켜본 쪽은 진보 성향 언론과 정치권이었습니다. 그동안 투우의 잔혹성을 비판하며 관련 소식을 지면에서 사실상 배제해 온 유력 좌파 성향 일간지조차, 젊은 세대가 투우를 되살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물음을 던졌다고 전해집니다. 금지와 규제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통제받기를 거부하는 청년들이 오히려 투우장으로 몰려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 셈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원인은 크게 세 갈래로 짚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강요에 대한 반작용입니다. 무엇이 옳은 가치인지 위에서 일일이 훈계하고 지시하는 방식에 청년들이 피로감을 느꼈고, 그 반발이 전통을 지키자는 문화적 반란의 형태로 표출되었다는 분석입니다. 둘째는 제도의 역설입니다. 과거 보수 정부가 투우를 국가 무형 문화유산으로 법제화해 둔 까닭에, 정부가 만 18세 청년에게 지급하는 400유로(유로당 약 1,500원 기준, 약 60만 원) 상당의 문화 바우처(문화비 지원권)를 투우 관람에는 쓸 수 없게 한 조치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고, 결국 국가 예산이 청년들의 투우장 입장을 돕는 통로가 되어 버렸습니다. 셋째는 마케팅의 진화입니다. 투우 기획사들은 소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고, 경기가 끝난 뒤 공연과 음악을 결합한 축제형 무대로 젊은 감각에 맞추어 판을 새로 짰습니다. 세비야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300유로(약 45만 원)짜리 청년 한정 시즌권을 선물하려 밤샘 줄서기에 나섰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집니다.
다만 이 열기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그늘도 분명합니다. 일부 지방정부가 열네 살 청소년에게 실전 투우 훈련의 길을 열어 주고 어린이에게 무료 관람석을 제공하는 정책을 두고,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를 근거로 미성년자를 폭력적 전통 행사에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는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문제와 아동 보호라는 가치는 전통이라는 이름만으로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이 논쟁이 좌우 정치권의 이해와 맞물려 격화되고 있다는 점 또한 냉정히 짚어 둘 대목입니다.
우리 사회에 주는 시사점
스페인의 사례가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은 투우 자체의 옳고 그름이 아닙니다. 핵심은 한 세대가 다른 세대에게 가치를 전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어떤 관습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 그것을 설득이 아니라 금지와 낙인으로 밀어붙이면 오히려 반발과 결집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통과 변화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에도 유효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시니어 세대의 역할이 새삼 무겁게 다가옵니다. 오랜 세월 공동체의 관습과 그 변화를 함께 겪어 온 시니어야말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지 가늠하는 데 필요한 균형 감각을 지닌 세대입니다. 전통을 무조건 붙드는 것도, 낡았다며 통째로 내치는 것도 답이 아님을 삶으로 아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통이든 개혁이든 그것을 이루어 가는 방법의 성숙함입니다. 위에서 누르는 힘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공감을 얻는 변화, 낡은 것을 무작정 버리기보다 지킬 가치와 고칠 부분을 함께 저울질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 저울의 눈금을 가장 정확히 읽어 낼 수 있는 이들이 바로, 오랜 경험으로 다져진 우리 시니어 세대일 것입니다.
출처: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2026년 7월 9일 자 7면 보도(마드리드발), 스페인 투우 주최자 연합(ANOET) 집계 인용. 본문의 통계 수치와 유로 환산액(유로당 약 1,500원 적용)은 원 보도에 근거한 것으로, 게재 전 편집부의 환율 및 사실관계 재확인이 필요합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