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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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昼行燈(ひるあんどん, 히루 안돈; 대낮에도 켜진 가로등; No Light in the Eyes)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유머만큼 드러나는 것이 드뭅니다. 일본의 유머는 삶과 죽음, 정부 권력, 종교, 도덕, 생활 방식까지도 그 소재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약점과 문제, 실망 속에 살고 있으며, 유머는 이를 견디게 하는 수단이자 종종 정부나 종교의 불합리·어리석음·잔혹함에 맞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도구였습니다.

봉건적 구조, 엄격한 예법, 높은 미적 기준, 현상 유지에 대한 집착, 인간 생명에 대한 냉담한 태도로 특징지어진 일본 사회에서는 삶이 극단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오히려 엄청난 양의 다양한 유머가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유머는 상당히 온화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유머 주제는 성(性), 화장실, 무능한 공직자, 우스꽝스러운 지도자, 자기 과시로 가득한 사람 등이었습니다.

‘昼行燈(ひるあんどん, 히루 안돈; 대낮에도 켜진 가로등)’은 특별히 눈에 띄지 못하고 존재감이 없는 사람을 다소 익살스럽게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안돈(行燈, あんどん)은 종이와 대나무로 만든 일본식 등불을 뜻하고, 히루(昼, ひる)는 낮을 뜻합니다.

전통적인 안돈은 얇은 종이를 씌워 실내용으로, 두꺼운 종이를 씌워 실외용으로 썼습니다. 기름(유채씨 기름)을 태워 불빛을 냈으나, 그 빛은 본래 희미했습니다. 따라서 낮 동안 켜져 있는 안돈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쓸모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여기서 비롯된 표현이 바로 히루 안돈 = 낮의 등불, 곧 ‘쓸모없고 존재감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昼行燈(ひるあんどん, 히루 안돈)’은 반드시 둔한 사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느린 반응의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는 ‘게이코토(けいこと, 蛍光灯, 형광등)’라는 말이 따로 있습니다. 형광등은 전구보다 켜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昼行燈(ひるあんどん, 히루 안돈)’은 특히 정부 부처에서 흔했습니다. 관공서는 늘 인원이 과잉이었고, 연줄로 들어온 무능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시간이 흘러 기업 세계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외국인들이 일본에서 누가 ‘昼行燈(ひるあんどん, 히루 안돈)’인지 알아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어떤 외국인은 부서를 이끄는 과장이 아무 일도 안 하고 차만 마시는 모습만 보고 ‘낮의 등불’이라고 착각했습니다. 또 너무 유능하고 적극적이어서 일본 문화에 맞지 않다고 여겨지거나, 해외 생활이 길어 이질적인 사람은 일부러 일이 거의 주어지지 않아 ‘히루 안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성실하고 붙임성 있지만 복잡한 업무는 도저히 못하는 사람에게는 작은 일만 맡기고 방치하는 경우도 있어, 결과적으로 ‘낮의 등불’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일본 사회의 특성상, 외국인이 일본인의 진짜 능력을 판단하려면 꽤 오랜 시간 함께 일해봐야만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서로의 언어 장벽이 있어 능력을 소개하거나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고, 게다가 일본인은 개인으로 두드러지기보다 집단 속에서 협력하는 것을 요구받습니다. 따라서 유능함이나 무능함은 시간이 지나야만 드러납니다.

게다가 일본 문화에서는 눈에 띄게 유능하거나 공격적인 관리자는 좋은 팀플레이어가 아니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드러나지 않는 ‘昼行燈(ひるあんどん, 히루 안돈)’형 관리자가 이상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상사를 부르는 별명 ‘멍게’와도 유사한 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 직원 중에서 누가 누가 ‘昼行燈(ひるあんどん, 히루 안돈)’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짧은 근무의 한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