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에게 주는 교훈
오늘날 영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충격적입니다. 1,400만 명이 경제적 이유로 끼니를 거르고 있으며, 그 중 약 380만 명은 어린이입니다. 세계 6위 경제대국으로 불리는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현실
은 단순히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복지국가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연대의 의미를 되묻는 사건입니다.‘풍요의 나라’에서 굶주림이 확산되는 이유
영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단순히 소득 부족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생활비 위기(cost of living crisis)라는 표현처럼, 임대료와 에너지 비용은 계속 치솟고, 복지 혜택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정부가 유지해 온 두 자녀 상한 제도(child benefit cap)는 세 번째 자녀부터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만들어 수십만 가정을 빈곤의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통계는 이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민간 임대 주택 거주자의 28%가 식량 불안정을 겪고 있으며, 사회주택에 사는 가구의 비율은 44%에 이릅니다. 반면 자가 소유 가구는 8%에 불과합니다. 주거 환경과 경제적 계층이 아이들의 끼니와 직결되는 현실입니다.
또한 주목할 점은 푸드뱅크를 찾는 가구 중 30%가 ‘일하는 가정’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일자리를 갖고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워킹 푸어(working poor)’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임금 노동이 더 이상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뼈아픈 진실을 보여줍니다.
정치적 책임과 사회의 분노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정치적 실패”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노동당은 집권 당시 “푸드뱅크 의존이라는 도덕적 상처를 치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질적인 대책은 늦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아동빈곤행동그룹 대표는 “매일 100명 이상의 아동이 빈곤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제도 개혁을 촉구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도 절절합니다. 소매업에 종사하는 한 싱글맘은 “월말이 되면 제 끼니를 거르고 딸에게 먹인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는 복지 제도가 더 이상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좌파 성향의 노동당 의원들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존엄이지 빈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고, 독립 의원들은 주거비와 생활비 상승이 모든 정책 효과를 잠식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제도의 설계와 정책적 우선순위에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
영국의 굶주림 위기는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한국 역시 고령화와 저출산이라는 구조적 문제 속에서 생활비 위기, 주거 불안, 불평등 심화가 사회적 갈등을 키우고 있습니다. 특히 고령층의 경우, 소득이 줄어드는 은퇴 이후에도 의료비, 주거비, 생활비는 오히려 증가하는 이중고에 시달립니다.
영국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제도가 사람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복지 혜택은 과거의 기준에 묶여 있고, 생활비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며, 제도 개혁은 정치적 갈등 속에 지연됩니다. 우리 역시 기초연금, 장기요양보험, 주거 지원 제도가 급변하는 사회 구조에 맞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동일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주거와 관련된 지원은 시급한 과제입니다. 영국처럼 임대료 상승이 가계 전체를 압박할 경우, 고정 수입에 의존하는 시니어층은 가장 먼저 타격을 입게 됩니다. 또한, 일자리 정책 역시 중요합니다. 단순히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소득과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구조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존엄을 지키는 사회로 나아가기
굶주림은 단순히 음식 부족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곧 존엄의 상실이며, 사회적 신뢰의 붕괴입니다.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푸드뱅크에 줄을 서야 하는 현실은 공동체 전체의 실패를 의미합니다.
시니어 세대가 경험으로 잘 아는 것처럼, 사회적 연대는 위기 때 빛을 발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서로 돕고 일어섰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연대는 제도의 틀 안에서 작동해야 합니다. 개인의 선의만으로는 구조적 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국의 사례를 거울삼아, 고령층뿐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안전망을 강화해야 합니다. 기초연금 현실화, 의료·주거 통합 돌봄, 안정적인 고령 일자리 창출 등이 시급히 추진되어야 합니다.
맺음말
영국의 1,400만 명 굶주림 사태는 우리에게 중요한 경고를 줍니다. 세계 어디서든 복지 제도가 현실과 동떨어지면, 풍요의 나라에서도 아이들이 굶주릴 수 있습니다.
시니어 세대가 걸어온 길은 이미 이런 진실을 증명합니다. 경제성장만으로는 결코 사회적 안정을 보장할 수 없으며, 복지는 성장의 부산물이 아니라 성장의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마주할 도전은 분명 큽니다. 그러나 영국의 사례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고, 제도를 현실에 맞게 개혁하며, 존엄을 지키는 정책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더 나은 길을 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