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세 사운드 아티스트가 들려준 범고래와의 13년 협연, ‘평생 현역’을 증명하다
지난 8월 어느 저녁, 미국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한 호텔 옥상에는 200여 명의 문화 애호가가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새 음반 ‘범고래의 최대 히트곡(Orcas’ Greatest Hits)’의 발매를 축하하고, 그 음반을 만든 79세의 사운드 아티스트 짐 놀먼(Jim Nollman)의 오랜만의 뉴욕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백발에 흰 수염을 기른 그는 범고래가 그려진 티셔츠 차림으로 행사에 등장해 함께 소리를 나눈 범고래들에게 먼저 고마움을 전했다고 합니다. 이날 발매된 음반에는 놀먼과 동료들이 수중 마이크와 신중하게 배치한 보트를 이용해 야생 범고래와 즉흥 합주를 펼친 13년간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놀먼의 이력은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매사추세츠에서 성장해 터프츠 대학교(Tufts University)에 다니던 시절부터 실험적 무대 연출에 관심을 보였던 그는, 이후 멕시코 치아파스에서 점토 피리로 이웃집 칠면조를 울게 하거나, 샌프란시스코 인근 농장에서 300마리의 칠면조와 함께 민요를 녹음하는 등 수십 년에 걸쳐 다양한 동물과의 음악적 교감을 시도해 왔습니다. 이후 그의 실험은 캥거루쥐와 늑대를 거쳐 하와이의 돌고래로 확장되었으나, 정작 바다에서 돌고래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해 좌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대중과 후원자들의 관심은 계속 이어졌고, 그는 마침내 직접 큰 배 위에 세계 최초의 수중 녹음 스튜디오를 만들어 냈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 도전이 어떤 거대한 제도적 지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가 ‘오르카난다(Orcananda)’라 이름 붙인 이 작은 만의 스튜디오는, 범고래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이 스스로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전기기타 연주로 범고래의 호기심을 유도하고, 노래가 시작될 때만 녹음 버튼을 눌렀다는 그의 방식에는 카디시(유대교 기도문)를 읊는 한 시니어부터 티베트 라마승, 신시사이저 연주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이 동참했습니다. 놀먼은 범고래가 인간의 기교보다 강한 리듬, 즉 그루브(groove)에 반응한다는 점을 일찍이 깨달았다고 전해집니다. 실제로 제임스 브라운 풍의 리프를 연주하자 범고래 무리가 함께 춤을 추듯 반응했고, 인도 음악 양식인 라가(raga)를 바탕으로 47마리의 범고래 한가운데서 즉흥 연주를 펼친 사례, 12마디 블루스 진행에서 범고래가 코드 변화를 함께 만들어 낸 사례 등은 그의 예술적 통찰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13년간 쌓인 약 60시간 분량의 테이프는 오랫동안 창고에 잠들어 있다가, 최근 미국의 저명한 음반 아카이브인 스미소니언 포크웨이스(Smithsonian Folkways)와 연이 닿으면서 비로소 정식 음반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날 행사에서는 곤충과 혹등고래의 소리와도 협연해 온 재즈 음악가 데이비드 로텐버그(David Rothenberg)가 향유고래와 혹등고래의 녹음에 맞춰 클라리넷을 연주하며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다고 합니다.
이 일화가 시니어 독자에게 시사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79세라는 나이는 흔히 은퇴 이후의 정적인 삶을 떠올리게 하지만, 놀먼의 사례는 오랜 세월 축적된 경험과 전문성이 새로운 도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더욱 눈여겨볼 대목은, 그가 먼저 제도적 지원을 요구하기보다 스스로 도구를 만들고 방법을 개척한 뒤에야 비로소 스미소니언과 같은 권위 있는 기관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라 개인의 자발적 노력과 검증된 성과에 상응하는 합리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금 확인시켜 줍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우리 사회에서도 시니어를 복지의 수동적 수혜자로만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오랜 경험과 축적된 통찰을 지닌 사회적 자산으로 재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재평가가 막연한 이상화에 그치지 않으려면, 개인의 자립적 도전 정신을 존중하는 전통적 가치와 더불어 객관적 성과에 기반한 합리적 지원 기준이 함께 자리 잡아야 할 것입니다. 평생을 실험과 도전으로 채운 한 시니어 예술가의 이야기는, 나이가 창조와 기여의 한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