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몰두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덤으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대개 삶과 반대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미국의 칼럼니스트 윌 맥그래스(Will McGrath)가 가족과 함께 보낸 ‘묘지의 여름’은 오히려 정반대의 사실을 보여줍니다. 죽음과 유한성을 바라보는 시간이 삶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깨닫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뉴욕타임스 국제판은 8월 21일자 오피니언에서 그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New York Times)
맥그래스는 지난 1년 동안 미국 사회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과 사회적 갈등을 가까이에서 경험했습니다. 그가 정신건강 위기 대응요원으로 일하면서 총격 현장에서 어린이들을 만나야 했던 경험은 죽음이 결코 먼 곳의 추상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웠습니다. 그는 그 무거운 현실을 견디는 한 방법으로 묘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미니애폴리스 인근의 레이크우드 묘지를 산책하고, 나무 그늘 아래 접이식 의자를 펴고 잠시 머물며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름과 삶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에게 묘지는 우울한 장소라기보다 오히려 ‘산림욕’과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과 뉴스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대사회의 긴장과 불안에서 한 걸음 물러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873년 불과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리비 스토러(Libbie Storer)의 묘비 앞에서 그는 이름 하나만 남은 한 사람의 삶을 상상했습니다. 짧은 비문은 오히려 그 사람이 한때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을 강하게 말해주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가족여행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맥그래스는 아내와 세 자녀와 함께 미네소타, 위스콘신, 미시간, 아이오와, 일리노이주의 묘지를 찾아다녔습니다. 슈피리어호와 맞닿은 라포인트 인디언 묘지에서는 오지브웨족의 전통적인 영혼의 집을 살펴보았고, 매키낵섬에서는 200년 전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흔적을 마주했습니다. 천사와 사슴이 새겨진 묘비에서부터 어린아이의 묘,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의 묘까지, 각각의 묘지는 서로 다른 시대와 삶의 흔적을 품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아이들도 처음에는 이 여행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결국 죽음에 관한 대화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가족은 ‘좋은 죽음’이 무엇인지, 죽은 뒤 자신의 몸을 어떻게 처리하고 싶은지까지 이야기했습니다. 죽음을 가족 안에서 금기시하지 않고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맥그래스가 만난 정신건강 위기 대응 동료 콜터 플래너건(Colter Flanagan)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그는 자신의 허벅지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문신을 새겼습니다. 그에게 이 말은 삶을 비관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지금 되고 싶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내가 해야 할 행동을 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묻도록 만드는 삶의 기준입니다.
현대사회는 죽음을 가능한 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노화를 늦추고 젊음을 유지하는 것이 성공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죽음에 관한 대화는 가족 사이에서도 쉽게 꺼내기 어려운 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외면한다고 해서 죽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에 대한 준비가 부족할수록 갑작스러운 이별과 상실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시니어 세대에게 이 이야기가 특별히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신체적 변화가 늘어나는 과정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다리라는 말이 아니라 남은 삶을 허투루 보내지 말라는 권유에 가깝습니다.
묘지는 또한 기억의 장소입니다. 이름과 생몰연도가 새겨진 작은 돌 하나만으로도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남습니다. 화려한 성공을 거둔 사람도, 평범하게 살아간 사람도 결국에는 몇 줄의 기록으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사실이 현재의 삶을 더욱 소중하게 만듭니다.
맥그래스의 가족이 묘지 여행을 마치고 숲길을 걸어 나올 때 아이들은 여전히 장난을 치고 웃었습니다. 죽음의 장소를 오래 바라본 끝에 그들이 발견한 것은 죽음의 어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순간의 생생함이었습니다. 묘비 사이를 지나온 뒤의 웃음소리가 오히려 삶의 소중함을 증명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우리 역시 때때로 너무 많은 정보와 자극 속에서 살아갑니다. 스마트폰에는 새로운 뉴스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사회적 갈등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집니다. 그러다 보면 정작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할 여유를 잃기 쉽습니다.
그래서 묘지가 주는 교훈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오늘을 더 진지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족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하고, 오래 미뤄둔 일을 시작하고, 가까운 사람과 한 끼 식사를 나누는 일도 모두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묘비에 새겨진 이름들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유한하며, 결국 남는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만이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았느냐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묘지는 죽은 사람들의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는 장소인지도 모릅니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인정할 때, 오늘의 햇빛과 가족의 웃음소리, 평범한 산책 한 걸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더욱 분명해집니다.
결국 ‘묘지의 여름’이 발견한 위안은 죽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삶을 제대로 바라보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오래된 문장은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 기억을 통해 오늘의 삶을 더 충실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캐어유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