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6일
12-22-1800

– 仕込む(しこむ, 시코무, 일의 영적차원, The Spiritual Dimension of Work)

‘仕込む(しこむ, 시코무, 일의 영적차원, The Spiritual Dimension of Work)’는 일본 사회에서 일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핵심적인 개념으로, 흔히 ‘The Spiritual Dimension of Work’, 즉 ‘일의 영적 차원’으로 설명됩니다. 이 단어는 본래 ‘미리 준비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단계에서 공을 들이다’, ‘겉으로 드러나기 전에 내부를 다져 놓다’라는 뜻을 지닌 일본어 동사에서 출발합니다. 요리에서는 재료를 손질하고 숙성시키는 과정을 가리키고, 무도나 연극, 전통 예술에서는 기초 연습과 반복 훈련을 의미하며,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사전 준비와 내적 정비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일본 문화의 맥락에서 ‘仕込む(しこむ, 시코무)’는 단순한 준비 작업이나 사전 단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 개념은 일을 대하는 태도 자체, 그리고 일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단련해 가는 과정을 포괄합니다. 다시 말해, ‘仕込む(しこむ, 시코무)’는 결과를 위한 기술적 준비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사람을 만들어 가는 시간과 자세를 의미합니다.

‘仕込む(しこむ, 시코무)’가 ‘일의 영적 차원’으로 해석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개념은 성과나 결과보다 과정 속의 자기 수양을 중시합니다. 아직 성과가 나타나지 않은 시간을 헛된 공백으로 보지 않고, 누구도 지켜보지 않는 단계에서도 성실함을 유지하며, 즉각적인 보상이 없어도 일을 지속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때 핵심은 효율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일을 통해 능력과 기술을 키우는 동시에, 인내와 집중력, 품성과 같은 인간의 내적 자질이 함께 길러진다고 보는 관점이 바로 ‘仕込む(しこむ, 시코무)’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일본적 노동관에서 일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자기 내면을 연마하는 수행의 장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결과와 속도를 중시하는 문화와 뚜렷한 대비를 이룹니다. 성과 중심 문화에서는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한 뒤, 결과를 평가하는 구조가 일반적입니다. 반면 ‘仕込む(しこむ, 시코무)’ 중심의 사고에서는 준비와 반복, 그리고 축적이 먼저 이루어지고, 결과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 과정에서는 “왜 아직 성과가 나오지 않는가”라는 질문보다 “지금 제대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仕込む(しこむ, 시코무)’에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존중하는 윤리도 깊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일하지 않고, 기록으로 남지 않아도 성실함을 유지하며, 자신의 공로를 앞세우지 않는 태도가 미덕으로 간주됩니다. 그 결과 ‘仕込む(しこむ, 시코무)’는 자기 과시와는 거리가 멀고, 묵묵한 준비와 침묵 속의 노동을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합니다. 일본 조직 문화에서 “아직 준비 중입니다”라는 말이 변명이나 회피가 아니라 책임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기초와 내공, 준비의 중요성은 자주 강조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빠른 성과를 요구하는 압박, 가시적인 결과 중심의 평가, 그리고 준비 과정이 쉽게 보이지 않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긴장이 반복적으로 발생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仕込む(しこむ, 시코무)’는 단순히 일본 특유의 문화 개념을 넘어, 오늘날 노동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하는 질문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성과 이전의 시간, 드러나지 않는 노력, 말보다 먼저 쌓이는 준비의 가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仕込む(しこむ, 시코무)’는 일을 잘하는 기술이나 요령을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일을 통해 어떻게 버티고, 어떻게 성숙해지는가를 묻는 사고방식입니다. 일을 단순한 기술로만 보지 않고, 성과로만 평가하지 않으며, 과정 속에서 인간이 단련된다고 믿는 세계관, 그것이 바로 ‘仕込む(しこむ, 시코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전통적으로 자신들만의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Protestant Work Ethic)’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그러하듯, 일본에서의 노동에 대한 영적 강조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경험된 그 어떤 것보다도 훨씬 더 깊은 차원으로 나아갔습니다.

과거 일본 사회에서는 올바른 기술과 올바른 노동 태도를 기르는 일이 개인의 성향이나 우연에 맡겨지지 않았습니다. 노동의 도덕적·윤리적 차원에 대한 교육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현장 훈련의 핵심 요소였으며, 사회적 지위나 직업적 신분과는 무관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도덕성과 윤리에 대한 요구는 더욱 강조되었지만, 가장 낮은 지위의 노동자조차도 자신의 노동이 지니는 사회적·영적 의미에 대해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훈련은 단순히 숙련공이나 장인이 견습생에게 직접 강의하는 방식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목수가 자신의 견습생을 연극 공연에 보내어 윤리와 올바른 사회적 행동을 배우게 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도쿠가와 막부 시대(1603~1868) 중기에 이르러서는, 노동을 종교적 체험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노동이 곧 영적 충만, 다시 말해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사상이 공식적으로 가르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새로운’ 경제 이론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일본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이미 실천해 오던 사고방식을 제도적으로 인정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이 새로운 사상 체계의 교육 과정은 ‘仕込む(しこむ, 시코무)’, 즉 ‘윤리와 도덕에 대한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었습니다. ‘仕込む(しこむ, 시코무)’는 학문 교육뿐만 아니라 직장 내 훈련에서도 일본인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의 대기업들이 신입사원에게 실시하는 초기 교육과 훈련의 거의 전부는 해당 기업 고유의 ‘仕込む(しこむ, 시코무)’에 관한 것이며, 직무 수행 능력에 관한 교육은 그다음 문제입니다. 일본의 고용주들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신입사원이 이미 갖고 있는 어떤 기술적 숙련보다도 신념과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하며, 기업의 관점에서는 신념과 태도가 전문 기술이나 지식보다도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仕込む(しこむ, 시코무)’는 직원들의 사기, 근면성, 충성심에서부터 노사 관계에 이르기까지 기업 활동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일본 기업 성공의 ‘비밀’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일부 일본 기업들은 신입사원들을 군대식 ‘부트캠프’에 보내어, 집단으로 일하는 법, 상급자의 지시에 대응하는 법, 그리고 군인이 전투를 위해 훈련받듯 회사에 모든 것을 바치는 자세를 체득하게 합니다. 이러한 훈련의 결과는 매우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일반적으로 일본 기업의 직원들은 실제로 잘 훈련된 군인처럼 행동합니다. 말투는 공손하고 격식을 갖추며, 회사 내에서는 장난을 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업무와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근무 공간을 깨끗하고 질서 정연하게 유지합니다. 특히 미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처음 일본을 방문할 때, 호텔이나 백화점을 포함한 일본 기업 전반에서 보이는 규율과 질서에 깊은 인상을 받거나 심지어 놀라움을 느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서구적 영향은 일본 사회에서 ‘仕込む(しこむ, 시코무)’의 역할을 점차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학교를 벗어난 환경에서 일본의 젊은 세대는 점점 더 미국과 유럽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서 볼 수 있는 태도와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우량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상당한 수준의 순응이 요구되며, ‘仕込む(しこむ, 시코무)’ 체계는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이 가까운 시일 내에 전통적인 체질을 완전히 벗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신입사원을 중심으로 ‘극기 훈련’을 통해 일본의 ‘仕込む(しこむ, 시코무)’ 교육을 흉내낸 적이 있었습니다. 불과 20여 년전의 일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런 잔재가 남아있는지 여러분의 정보를 댓글로 공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