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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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정한 효도

부모가 가난하면 자녀가 부양해야 한다는 오래된 윤리가, 한때 미국에서는 법률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효도 책임법(filial responsibility laws)입니다. 경제적으로 곤궁한 부모를 성인이 된 자녀가 재정적으로 책임지도록 의무화한 제도로, 더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한때 미국 50개 주 가운데 40개 주에 이 법이 존재했습니다. 가족의 도리를 도덕의 영역에 두지 않고 국가가 법으로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효를 둘러싼 동서양의 거리가 우리가 짐작하는 것만큼 멀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절반 안팎으로 줄어든 의무

그러나 오늘의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같은 보도에 따르면, 현재 이 법을 유지하고 있는 주는 스물네 곳에 못 미치며, 그나마 실제로 집행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한 세대 만에 그 수가 마흔에서 절반 안팎까지 줄어든 셈입니다. 법조문은 남아 있으되 현실에서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 이른바 ‘잠자는 법’이 된 것입니다. 드물게 법이 적용된 사례는 주로 부모가 머물던 요양시설의 비용을 자녀에게서 회수하려는 목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효를 법으로 강제하려던 시도가 사실상 빛이 바랜 현장입니다.

왜 사라지고 있는가

이 변화를 단순히 효의 쇠퇴나 인심의 각박함으로만 읽는 것은 성급합니다. 그 배경에는 몇 가지 구조적 변화가 자리합니다. 첫째, 산업화와 도시화로 가족이 흩어지면서, 부모와 자녀가 같은 생활권에서 서로를 부양하던 시대가 저물었습니다. 둘째, 자녀의 형편이 부모를 부양할 만큼 넉넉하지 않은 경우가 늘면서, 빈곤한 부모를 빈곤한 자녀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낳는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셋째, 무엇보다 공공 의료부조와 사회보장 제도가 확충되면서, 가족 대신 사회가 돌봄의 비용을 분담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옮겨 갔습니다. 효도 책임법의 퇴조는 곧 가족 부양에서 사회적 부양으로의 이행을 보여 주는 하나의 지표인 셈입니다.

한국 사회라는 거울

이 대목에서 우리는 거울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우리 민법 또한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 사이에 서로 부양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의 흐름은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대폭 완화되었고,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던 시니어를 국가가 직접 보듬는 방향으로 정책이 이동해 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하는 사회에서, 부양의 책임을 오롯이 가족에게만 지우는 방식이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현실 인식이 그 바탕에 있습니다. 미국의 잠자는 법은 멀리 있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길의 한 풍경인 것입니다.

효와 안전망 사이에서

다만 법의 퇴조를 효의 종언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강제할 수 없다고 하여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살피는 마음은 법조문이 사라진 뒤에도 가정을 지탱하는 가장 깊은 토대로 남습니다. 다만 그 마음이 한 가정의 어깨만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시대가 되었기에, 사회가 든든한 안전망으로 가족의 곁을 받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족의 정성과 사회의 책임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대신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시니어의 노후를 떠받치는 두 기둥입니다. 효를 법의 강제에서 풀어 주되 그 빈자리를 각박함이 아니라 더 성숙한 연대로 채우는 것, 미국의 한 낡은 법이 퇴장하며 우리에게 남긴 숙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출처 및 부기: 본 칼럼은 더 뉴욕 타임스 2026년 6월 28일자 ‘흥미로운 사실들(Facts of Interest)’ 지면에 실린 효도 책임법 관련 요약 보도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인용하고 편집장의 견해를 더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시행 주(州)의 수와 집행 실태에 관한 수치는 해당 보도가 제시한 내용이며, 적용 주의 정확한 수는 보도가 밝힌 ’24개 미만’에 근거합니다. 한국의 제도 관련 서술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정책 동향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구체적 적용 기준은 관계 기관의 최신 고시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