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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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잃은 손이 세상과 나눈 대화

뉴질랜드 출신의 화가 수잔 테 카후랑기 킹(Susan Te Kahurangi King)은 올해 일흔다섯을 맞은 시니어 예술가입니다. 그녀는 세 살 무렵 갑자기 언어를 잃고 자폐 스펙트럼(Autism Spectrum) 특유의 세계 속으로 침잠했지만, 연필을 쥔 손끝만큼은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습니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그녀의 드로잉을 영구 소장품으로 등재했고, 뉴욕의 저명한 미술평론가는 그녀를 20세기 거장 빌럼 데 쿠닝(Willem de Kooning)에 견주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정작 고국 뉴질랜드에서조차 그녀를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 2026년 9월 7일 자)가 그녀의 삶을 심층 보도하면서, 한 시니어의 늦은 재능이 세상에 다시 드러나기까지의 과정이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마흔 살의 절필, 그리고 열여섯 해의 침묵

킹은 1950년대부터 30여 년간 쉼 없이 그림을 그렸으나, 마흔 살 무렵 돌연 붓을 놓았습니다. 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이후 16년 동안 그녀는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1973년, 지적장애 아동을 돕기 위한 한 자선 전시에 그녀의 드로잉 두 점이 출품되어 단 3파운드(현재 환율 기준 약 5,900원, 2026년 9월 5일 서울 외환시장 기준)에 팔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녀의 재능이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던 시절의 단면입니다. 그러다 2008년, 가족들이 다시 그림 도구를 손에 쥐여준 것을 계기로 창작이 재개되었고, 이듬해 58세의 나이로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한 점당 수천 달러에 이르는 수표를 받는 작가로 거듭났습니다. 2013년 파리에서 열린 아웃사이더 아트 페어(Outsider Art Fair)에서는 출품작 전량이 팔려나가는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가족이 지켜낸 70년의 기록

킹의 재기를 가능케 한 것은 다름 아닌 가족의 헌신이었습니다. 그녀의 외조모는 손녀가 말 대신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챈 인물이었고, 어머니는 평생 딸의 상태를 세세히 기록했습니다. 여동생은 지난 20년간 언니가 남긴 약 2만 장의 드로잉을 손수 정리하고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왔습니다. 반면 1965년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을 당시에는, 스스로 의사를 말로 표현하도록 유도한다는 명분 아래 목욕과 식사는 물론 그림 도구까지 박탈당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녀를 지켜낸 것은 제도가 아니라 가족의 곁이었다는 사실이 이 보도의 핵심입니다.

아웃사이더라는 이름의 두 얼굴

미술계는 킹과 같이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의 작품을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라 부릅니다. 이는 1940년대 프랑스 작가 장 뒤뷔페(Jean Dubuffet)가 창안한 아르 브뤼(art brut, 가공되지 않은 예술)라는 개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큐레이터들 사이에서조차 이 명칭이 예술 그 자체가 아니라 제작자의 사회적 지위만을 지칭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됩니다. 킹을 대변하는 갤러리스트 역시 그녀의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이 작품 평가의 본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재능은 재능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이 원칙은, 시니어의 능력을 나이나 질환이라는 틀로만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우리 사회의 과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한국 역시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시니어와 발달장애를 지닌 가족 구성원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킹의 사례는 국가·시설의 역할과 가족의 역할이 상호 보완적이어야 함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지원(Fördern)이라는 이름 아래 제도가 개입하더라도, 그 방식이 인격을 무시한 획일적 통제로 흐를 경우 오히려 당사자를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사례가 증언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부담을 가족의 헌신에만 지우는 것 또한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가족의 곁을 국가가 합리적으로 뒷받침하는 기준, 즉 요구(Fordern)와 지원의 균형입니다. 전통적인 가족 질서를 존중하되, 그것이 무너지지 않도록 합리적인 사회적 안전망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늦게 핀 꽃이 전하는 메시지

킹의 이야기는 나이가 들어서도 인생의 절정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그녀는 58세에 첫 전시를 열었고, 64세에 정식 진단을 받았으며, 지금 75세에도 세계 유수의 갤러리에서 신작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시니어를 은퇴 이후 소진된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성장하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자산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시각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전통적인 가족의 유대와 합리적인 사회적 지원이 함께할 때, 시니어의 잠재력은 나이와 무관하게 다시 꽃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노년의 화가는 붓으로, 그리고 침묵으로 웅변하고 있습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