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보부아르·니체가 건네는 경고, “안락한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말라”
여름이 저물어 갑니다. 바닷가의 파도 소리나 숲 그늘의 고요함을 벌써 그리워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상담가나 요가 강사들은 이런 곳을 ‘나만의 행복한 장소’라고 부르곤 합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그런 장소 하나쯤은 품고 삽니다. 그러나 그 안락함이 인생의 최종 목적지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우리 사회에서 은퇴 설계라고 하면 대개 비슷한 그림이 떠오릅니다. 평생 부지런히 일해 모은 재산으로 남은 생을 편안히 누리는 삶, 여행과 맛집과 취미로 채워진 나날입니다.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마크 에드먼드슨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 국제판 기고에서 바로 이 통념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쾌락과 안락으로서의 행복이 과연 삶의 궁극적 목표가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즐거움을 향한 오래된 찬가
행복을 쾌락으로 이해하는 전통은 뿌리가 깊습니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인간이 즐거움을 최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살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향락의 삶을 산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1897년 감옥에서 쓴 긴 편지 『옥중기(De Profundis)』에서 즐거움을 위해 살았던 순간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에드먼드슨 교수는 이런 행복을 완전히 배척하지는 않되, 경계하며 절제된 분량으로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에 섭니다. 그 근거로 세 명의 철학자를 증인으로 불러냅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두 번째 적, 권태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두 적으로 고통과 권태를 꼽았습니다. 인간은 지성을 동원해 고통을 피하지만, 고통에서 벗어나는 순간 쉬지 못하는 마음은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맵니다. 그 끝에 도박으로 재산을 잃고, 불륜으로 가정을 깨뜨리며, 공연한 다툼을 벌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삶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에서 사교 모임, 연극, 카드놀이, 음주, 여행 같은 오락은 잠시의 처방일 뿐 곧 다시 지루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해법은 지성을 채울 대상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수집, 자연 관찰, 외국어 공부, 좋은 책을 읽고 요약하는 일 등입니다. 에드먼드슨 교수는 사람들이 행복의 상징으로 여기는 금빛 해변과 폭포 풍경 상당수가 실은 권태의 덫이라고 지적합니다.
보부아르가 권한 ‘자신만의 프로젝트’
프랑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 역시 수동적 행복보다 능동적 활동을 옹호했습니다. 그녀는 장폴 사르트르와 마찬가지로, 이미 완성된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는 태도인 즉자존재(être-en-soi)를 가장 위험한 유혹으로 보았습니다. 사회가 승인하는 외모와 행동의 규범에 순응해 흠 없는 모습을 보이려는 삶입니다.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특히 여성이 이런 압력을 강하게 받는다고 비판했지만, 남성 역시 하나의 정체성에 갇히라는 요구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 대안이 대자존재(être-pour-soi)입니다. 주어진 정체성만으로는 삶의 의미가 보장되지 않음을 깨닫고, 스스로 세운 ‘프로젝트’를 통해 가치를 만들어 가며 삶을 빚는 태도입니다. 이런 사람은 늘 행복하지는 않을지라도 자유를 스스로 떠맡았기에 삶이 의미를 얻는다는 것이 보부아르의 생각이었습니다.
니체가 경고한 ‘마지막 인간’
세 번째 증인은 프리드리히 니체입니다.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마지막 인간(der letzte Mensch)’이라는 인간형을 그렸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소소한 즐거움만 누리고, 결코 전력을 다하지 않으며, 큰 결실을 위해 무언가를 걸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약간의 자극과 공허한 오락이 그의 기쁨입니다. 작품 속 차라투스트라가 이 인간형을 경계하라고 외치자, 군중은 도리어 자신들을 그렇게 만들어 달라고 환호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마지막 인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은퇴 이후의 긴 시간이 던지는 질문
에드먼드슨 교수의 결론은 균형 잡혀 있습니다. 모든 만족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쾌락보다 의미를 추구하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의미를 좇는 사람에게도 휴식은 필요합니다. 니체조차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한동안 안락한 생활을 즐겼습니다. 다만 행복한 장소에 너무 오래 머물거나 평생 그곳에 눌러앉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경고는 한국의 시니어에게 특히 무겁게 다가옵니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퇴직 이후의 시간은 어느 세대보다 길어졌습니다. 그 긴 시간을 휴식과 오락만으로 채운다면 권태가 찾아오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무료함 끝에 도박이나 과음,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에 빠지는 일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반대로 배움을 이어 가고, 지역 사회에서 봉사하고, 평생의 경험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시니어들의 삶은 한결 단단합니다.
쉬되 멈추지 않는 삶
우리 선조들은 이 지혜를 일찍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주역(周易)』은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듯 군자는 스스로 힘써 쉬지 않는다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을 가르쳤습니다. 근면과 절제, 자기 수양을 삶의 근본으로 삼은 전통적 가치는 서구 철학자들의 결론과 놀랍도록 맞닿아 있습니다. 은퇴는 일에서 물러나는 것이지, 삶의 책임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평생 치열하게 살아온 시니어에게 휴식은 마땅한 권리이며, 쉼을 게으름으로 몰아세울 이유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쉼과 의미의 균형입니다. 바닷가에서 한 계절을 보냈다면, 다음 계절에는 책 한 권을 읽고 정리하거나, 새 언어를 익히거나,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세워 보시기 바랍니다. 행복은 붙잡으려 할수록 달아나지만, 의미 있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 곁에는 어느새 와 있기 마련입니다. 편안한 자리를 잠시 즐기되 그곳에 주저앉지 않는 삶, 그것이 긴 인생 후반전을 품위 있게 사는 길일 것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