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외면한 ‘조용한 학살’
세상은 놀랍게도 ‘진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무심할 때가 많습니다.
뉴스의 헤드라인은 정치인의 말 한마디나 연예계의 스캔들로 가득 차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오늘도 누군가 자신의 믿음 때문에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오래, 그리고 체계적으로.
최근 들어 서아프리카, 특히 나이지리아의 상황이 서서히 국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 더디고, 너무 늦었습니다. 수년 동안 그곳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믿음만을 이유로 살해당하거나, 마을에서 쫓겨나거나, 성당이 불태워지는 일을 겪어왔습니다.
이 폭력의 주된 가해자는 보코하람(Boko Haram)과 풀라니(Fulani) 무장세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의 표적은 기독교인뿐 아니라, 이슬람 내 온건파 무슬림들까지 포함됩니다.
7,000명, 그리고 20만 명
2024년 국제인권단체 ‘인터소사이어티(Intersociety)’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첫 8개월 동안 나이지리아에서 7,000명 이상의 기독교인이 살해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4년을 합치면 20만 명에서 30만 명 사이에 달합니다.
숫자는 차갑지만, 그 숫자 안에는 가족을 잃은 이들의 울음,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숨은 사람들의 공포, 무너진 교회당의 잔해가 있습니다. 이 수치는 단순히 지역 분쟁이나 부족 간 갈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종교적 정체성’을 이유로 한 조직적 박해, 즉 ‘신앙 기반의 인종청소’에 가깝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외면되었을까?
문제의 본질 중 하나는 ‘침묵’입니다.
국제사회는 오랫동안 이런 사건을 “내전” 혹은 “부족 갈등” 정도로 취급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을 가장한 침묵은 사실상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위가 됩니다.서구 언론들은 종종 이런 비극을 다루는 데 주저합니다.
‘기독교 박해’라는 말이 자칫 정치적으로 불편한 진실을 건드린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권은 특정 종교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한 개인이 자신의 신앙을 이유로 살해당한다면, 그것은 인류 모두의 존엄에 대한 공격입니다.
종교는 갈등의 원인일까, 평화의 약속일까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십자군 전쟁, 종교개혁기의 유럽 내전, 중동 분쟁 등에서 신의 이름은 때로 피의 깃발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종교는 인간이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평화를 모색하게 만든 근원적인 힘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신앙 그 자체’가 아니라, 신앙을 정치적 무기로 전락시키는 ‘이념화된 종교’입니다. 나이지리아에서 벌어지는 비극도 본질적으로는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이해관계, 그리고 종족 간 불평등이 얽힌 복합적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종교적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폭력은 더 잔혹하고 정당화된 형태로 변합니다.
나이 들어 믿음이란 무엇인가
시니어 세대에게 ‘믿음’은 단순히 종교적 정체성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의 세대는 어려운 시절, 가난과 혼란 속에서도 신앙을 통해 위로를 얻고, 공동체를 세워왔습니다. 그 믿음은 단지 교회나 절에 드나드는 행위가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침반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믿음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 살면서도, 다른 이들의 고통에는 너무 쉽게 무관심해졌습니다.
뉴스에서 먼 나라 이야기를 들으면 “그곳은 원래 위험하지”라며 넘겨버립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어쩌면 우리와 똑같이 노년의 평화를 꿈꾸던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신앙이란, 결국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현실적으로 한국의 한 개인이 아프리카의 폭력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알아보는 일’은 분명 우리의 몫입니다.
언론이 외면할 때라도, 우리는 그 현실을 기억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부나 국제기구가 움직이지 않을 때라도, 시민사회가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 존엄의 회복을 위한 참여입니다.
신앙의 자유는 단순히 예배당에서 찬송을 부를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양심과 진리를 따를 수 있는 근원적 자유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가 어느 한 지역에서 무너질 때, 언젠가 우리 사회의 다른 부분에서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침묵이 만든 비극, 그리고 희망의 시작
나이지리아의 한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겪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진실을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종교를 초월한 인간의 경고처럼 들립니다.
진실을 외면하는 사회는 결국 자신이 외면한 폭력의 결과를 돌려받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 타인의 박해를 외면한다면, 내일은 그 침묵이 우리를 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 세계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국제기구, 인권단체, 언론이 뒤늦게나마 이 사태를 다루기 시작했고, 몇몇 정치인들은 책임을 묻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직 작고 미약한 시작이지만, 무관심의 벽에 생긴 첫 균열입니다.
시니어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큰 가르침 중 하나는 ‘관심’입니다. 자신과 다른 이들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 그것이 곧 인간다움의 출발점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젊은 시절의 신념은 시험대에 오릅니다.
그러나 그때일수록 우리는 “내 믿음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야 합니다. 어떤 종교를 믿든, 신앙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언어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노년의 지혜로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