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31일
10-30-1600#158

— 떠남의 기술과 남음의 지혜

최근 미국에서는 연방정부를 중심으로 역사적인 규모의 ‘퇴직 쓰나미’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공직 사회를 떠받쳐온 세대들이 줄줄이 퇴임하면서, 행정기관 곳곳에서는 인력 공백이 생기고 업무가 지연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퇴직자를 처리해야 할 인사관리국조차 정작 자신의 직원 부족으로 인해 ‘퇴직자 관리’조차 버거운 상황에 처했다고 합니다. 퇴직을 기록하고 연금을 지급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퇴직 후 몇 달이 지나도 연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즉, 일하는 사람도, 떠나는 사람도 모두 어려움에 처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행정의 혼란이 아닙니다. 더 깊게 들여다보면, 그것은 한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모두 ‘퇴직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떠난 자리에는 누가 올까?”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미국의 공무원 사회가 겪는 혼란은 사실 모든 세대가 언젠가 마주할 현실의 축소판일지도 모릅니다. 한 세대가 일터를 떠나면, 다음 세대가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채워야 합니다. 하지만 인구 구조가 바뀌고, 젊은 세대가 공공직보다 자유로운 직업을 선호하면서 ‘세대 교체의 흐름’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조직은 비어가고, 남은 사람들은 과중한 업무 속에서 점점 지쳐갑니다.

떠남은 끝이 아니라 ‘전달’의 예술이다

퇴직이란 단어에는 언제나 약간의 쓸쓸함이 묻어 있습니다.

“이제 나의 시대는 끝났구나.”

하지만 떠남을 ‘끝’으로만 받아들이면, 그 안에 담긴 가능성을 놓치게 됩니다.

진정한 퇴직은 ‘단절’이 아니라 ‘전달’입니다. 내가 일하며 쌓아온 경험과 기술, 실수를 통해 배운 교훈,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은 통찰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과정이 바로 퇴직의 본질이어야 합니다.

미국 정부의 예에서 보듯, 갑작스러운 퇴직의 물결은 단지 업무 공백만이 아니라 ‘지식의 공백’을 남깁니다. 문서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노하우’들이 사라지고, 사람 간의 암묵적인 이해와 신뢰의 연결망이 끊어집니다.

한 세대가 떠나고 새로운 세대가 들어올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류’가 아니라 ‘맥락’입니다.

맥락이란 단어는 단순히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의 경험과 감정이 녹아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가 끊어지면 조직은 기억을 잃습니다.

기억을 잃은 조직은 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고통을 겪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책임

미국의 인사관리국(OPM) 관계자는 “이제 퇴직자를 관리할 사람조차 부족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이 말은 곧 ‘남아 있는 사람들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가를 말해 줍니다.

퇴직한 이들이 사라진 뒤, 남은 자들은 단지 ‘업무를 이어받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의 기반을 다지는 ‘잇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는 떠나고, 어떤 이는 남지만, 두 부류 모두가 한 사회의 순환 속에서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듭니다.

한국 사회 역시 같은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각 기관과 기업에서는 경력 단절과 후속세대 부재의 문제가 빠르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행정이나 공공서비스 분야에서는 ‘업무의 노하우’가 개인에게만 머물러 있고, 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거나 전수하는 문화가 부족합니다.

결국 누군가의 퇴직은 단순한 인사 이동이 아니라, 사회적 자산의 손실로 이어지게 됩니다.

퇴직 후에도 계속되는 ‘공헌의 형태’

퇴직이 곧 ‘사회적 은퇴’를 의미할 필요는 없습니다. 퇴직 후의 삶은 오히려 인생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시기일 수 있습니다. 노년학자들은 이 시기를 “경험 자본의 개화기”라고 부릅니다. 그동안 직업에 묶여 표현하지 못했던 역량이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시기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선진국의 많은 공공기관에서는 퇴직자들을 ‘멘토링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후배 공무원들에게 실무 조언을 제공하거나 복잡한 절차를 함께 정비하도록 돕습니다.이런 제도는 단순히 ‘재취업’을 넘어, 사회적 지식의 지속성을 높이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흐름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명예퇴직 공무원 멘토단’을 만들어 행정 경험을 후배들과 공유하게 하고, 사회적 기업에서는 퇴직 전문인력을 활용하여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퇴직의 시기는 달라도 ‘의미’는 같다

누구나 각자의 시계로 시간을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60세에, 어떤 이는 70세에, 또 어떤 이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터에 남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 떠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떠나느냐’입니다.

급작스럽게 떠나거나 준비 없이 퇴직을 맞이하면, 개인에게도 조직에게도 혼란이 찾아옵니다. 반대로, 자신의 역할을 돌아보고,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과정을 미리 준비한다면 퇴직은 결코 두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삶의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의식’이 됩니다.

남겨진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미국의 한 연방 공무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전략도, 계획도, 인수인계도 없이 떠나고 있습니다. 질문은 쏟아지지만, 답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이 말은 단지 미국 정부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반드시 새겨야 할 경고처럼 들립니다.

우리도 언젠가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그 떠남이 누군가의 혼란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도록 만드는 일은 지금 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퇴직의 파도는 누구에게나 옵니다. 그러나 그 파도를 어떻게 탈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미국의 사례가 보여주듯, 준비 없는 퇴직은 조직을 흔들지만, 지혜로운 퇴직은 사회를 성장시킵니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연결’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는 떠나며 다음 세대를 키우고, 남아 그 자리를 지켜 줍니다. 그렇게 세대는 이어지고, 사회는 다시 한 걸음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