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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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의 규제가 자유의 경계를 넘을 때

2026년 5월 2일 토요일, 독일의 권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은 정치면 ‘FRAKTUR’ 칼럼에 「자유(Freiheit)」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국가 개입 사이의 오래된 긴장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입니다. 그 발단은 두 가지 사안이었습니다. 독일 뮌헨 시의회가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행사장에서 샴페인을 비롯한 음료를 연출 목적으로 분사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독일 연립정부는 담배세 인상과 설탕세 신설을 공식 발표하였습니다. 두 조치 모두 ‘시민의 건강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습니다.

건강이라는 명분과 자유라는 가치

칼럼의 논지는 단호합니다. 국가가 시민의 건강을 이유로 세금을 올리고 일상의 선택에 간섭하는 것은,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고 결과를 감당할 자유, 즉 자기결정의 영역을 침해한다는 것입니다. 자유는 제도적 권리의 목록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그 책임을 지는 삶의 방식 그 자체라는 관점입니다. 이 시각은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오랜 전통과 맥을 같이합니다. 국가의 역할은 시민의 삶을 보호하되, 그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 데까지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흡연에 대한 칼럼의 시각도 주목할 만합니다. 흡연이 신체에 미치는 해악은 의학적으로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칼럼니스트는 흡연이 개인의 정서 안정과 스트레스 해소에 기여하는 측면을 완전히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과세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접근이라고 지적합니다. 바이에른주 경제부 장관 후베르트 아이방거(Hubert Aiwanger)는 설탕세 도입에 대해 “중앙 정치권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증거”라며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발언의 거칠기와 무관하게, 그 안에 담긴 문제의식은 분명합니다. 시민의 식탁과 소비 습관을 세금으로 교정하려는 시도가 과연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한 정책 수단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몸을 가두어도 정신을 가둘 수 없다

칼럼은 벨라루스 야권 인사 마리아 콜레스니코바(Maria Kolesnikova)의 증언을 인용합니다. 수감 생활 중에도 그녀는 단 한 순간도 자유롭지 않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육체는 구금할 수 있어도 정신은 구금할 수 없다는 이 선언은, 자유의 본질이 외부 조건이 아닌 내면의 선택에 있음을 일깨웁니다. 역설적이게도, 선의를 앞세운 국가의 개입이 바로 그 내면의 선택 공간을 조금씩 잠식해 간다는 점에서, 이 인용은 단순한 수사가 아닌 하나의 경고입니다.

한국 사회에 전하는 시사점

이 논의가 독일만의 이야기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한국에서도 담뱃세는 수차례 대폭 인상되었으며, 비만 예방을 명목으로 한 식음료 규제 논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건강’이라는 명분이 개인 선택의 영역을 무한정 침식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때입니다. 지원(Fördern)과 요구(Fordern)의 균형, 즉 시민의 삶을 지원하되 그 삶의 방식까지 요구하지 않는 절제가 민주주의 정부에 요구되는 덕목입니다.

국가는 부모가 아닙니다

시니어 세대는 이 논의에 있어 누구보다 성숙한 시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수십 년의 삶 속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며 살아온 경험이 곧 그 판단의 근거입니다. 국가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규제의 선의가 언제 간섭으로 바뀌는지를 체험으로 아는 세대가 바로 시니어 세대입니다. 건강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자유도 소중합니다. 국가는 시민의 후견인이 아닙니다. 시민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주체입니다. 그 당연한 원칙을 지켜내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가 끊임없이 씨름해야 할 본질적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