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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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과 다투는 연습, 인간관계를 구원할 수 있을까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The Times)는 지난 5월 9일자 지면을 통해,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한 남성이 인공지능(AI) 동반자 앱의 도움을 받아 약혼녀와의 갈등을 풀어낸 사례를 비중 있게 보도하였습니다. 남성 데릭 쿤(Derrick Koon)은 약혼녀가 집안일 분담에 소홀하다고 느끼며 오랫동안 답답한 심정을 안고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계발서를 펼치거나 부부상담을 찾는 길 대신, ‘에바 에이아이(Eva AI)’라는 인공지능 앱을 통해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미리 풀어 보는 방식을 택하였습니다.

쿤 씨가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에 대한 불만을 인공지능에게 토로하자, 기계는 곧바로 정중하게 사과하고 그동안의 인내에 감사를 표하였습니다. 이 가상의 대화에서 용기를 얻은 그가 약혼녀에게 같은 방식으로 차분하게 부탁을 건네자, 뜻밖에도 부드러운 동의가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는 인공지능 덕분에 상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고 술회하였습니다.

이러한 풍경은 결코 한 사람의 일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미국의 대표적 데이트 매칭 플랫폼 매치닷컴(Match.com)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인공지능을 동반자처럼 활용하는 이용자는 2024년과 2025년 사이에 세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에바 에이아이 이용자 가운데 약 80퍼센트가 남성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감정을 말로 풀어내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남성들이 기계를 일종의 연습 상대로 삼고 있는 셈입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신건강 역학(psychiatric epidemiology)을 가르치는 카레스탄 코넨(Karestan Koenen) 교수는 인공지능이 격앙된 감정을 가다듬고, 자신이 진정으로 전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정리하도록 돕는 보조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대화가 뜻대로 흐르지 않을 때 상대에게 곧장 폭발하는 일을 줄여 준다는 것입니다.

다만 코넨 교수는 동시에 분명한 경고도 덧붙였습니다. 결코 아프지도 않고 기분이 상하는 날도 없으며 언제나 사용자의 편에 서서 사과부터 건네는 인공지능에 길들여질 경우, 정작 곁에 있는 사람에게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게 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인간관계의 본질은 서로 다른 인격이 부딪히며 조정해 가는 과정에 있는 법인데, 늘 매끄럽게 응대하는 기계와의 대화에 익숙해질수록 사람과의 갈등을 견뎌 내는 근육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이 보도가 우리 사회, 특히 시니어 독자분들께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평생을 감정의 직설적 표현보다 인내와 절제로 살아오신 시니어 세대에게, 격한 말이 입 밖으로 나가기 전에 한 번쯤 다듬어 보는 도구가 생겼다는 점은 분명 일말의 긍정적 가능성을 지닙니다. 부부간의 오랜 갈등이나 자녀 세대와의 견해 차이를 조심스럽게 풀어 가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할 여지가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부 사이의 신뢰, 자식과의 정, 오랜 벗과의 우정은 기계가 대신 빚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견디고 다듬어 온 세월 속에 인간관계의 두께가 새겨져 있는 법입니다. 인공지능을 보조 수단으로 삼는 일은 가능하되, 그것이 사람과의 직접 대화를 대신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을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새로운 기술을 무조건 외면할 까닭은 없습니다. 다만 가족과 이웃, 부부와 벗이라는 오랜 관계의 가치를 묵묵히 지켜 가면서, 새로운 도구는 분별 있게 활용하는 균형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입니다. 인공지능과의 연습이 사람과의 관계를 진실로 구원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결국, 그 기계를 손에 쥔 사람의 성숙한 판단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도구는 도구일 뿐, 관계의 주인은 언제나 사람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