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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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없는 선의는 혼란을 낳는다

2026년 5월 초, 독일의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은 스페인의 대규모 이민자 합법화 조치를 상세히 보도하였습니다. 스페인 정부는 심각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0만 명 이상의 미등록 이주민을 대상으로 거주 및 노동 허가를 부여하는 이른바 ‘대규모 정규화(Regularización masiva)’ 조치를 시행 중입니다. 1986년 이후 일곱 번째에 해당하는 이번 조치를 통해 이미 120만 명 이상이 합법적 지위를 얻었습니다. 이 보도는 이민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유럽만의 문제가 아님을 다시금 환기시켜 줍니다. 급격한 고령화와 돌봄 인력 부족이라는 공통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이 사례는 냉철하게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노동 현장이 먼저 경고를 울렸다

스페인이 이번 합법화 조치에 나선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노동 현장의 인력 공백입니다. 건설업, 농업, 요식업, 호텔업뿐 아니라 돌봄 서비스 분야에서만 약 16만 명의 인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농업 단체 COAG는 인력 부족으로 수확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스페인 경제는 유럽연합(EU) 역내에서 2.8%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싱크탱크 Funcas는 이주민 유입이 이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합니다.

지난해 새로 창출된 일자리의 절반 가까이를 외국인이 채웠으며, 실업률은 18년 만에 처음으로 10%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폼페우 파브라 대학과 카를로스 3세 대학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합법화된 이주민 한 명은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보다 평균적으로 최대 4,000유로(약 630만 원)를 세금과 사회 보험료로 더 납부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러한 수치들은 단순한 인도주의적 명분이 아니라, 경제적 필요가 이 정책의 실질적 동력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순탄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스페인의 경험이 성공 일변도의 이야기로 읽혀서는 안 됩니다. 이주민 유입이 가져온 사회적 과제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대도시와 휴양지를 중심으로 임대료가 폭등하면서 이주민들 스스로 주거 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들 중 5분의 1은 과밀 주택에 거주하고, 3분의 1은 임대료 체납 상태에 있습니다. 학교 중퇴율 또한 현지인에 비해 현저히 높습니다. 저임금 보조 노동력이 단기적으로는 산업 현장의 수요를 충족시키지만, 장기적으로 경제 생산성 향상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이러한 불평등이 누적될 경우 잠재적 사회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주목할 점은 과거 보수 성향의 아스나르 총리 시절에도 50만 3,000명이 합법화된 전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이민 합법화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현실적 선택임을 방증합니다. 그러나 합법화의 기준과 절차, 사후 통합 관리 없이 문을 여는 것은 선의가 혼란으로 귀결되는 지름길입니다.

한국 사회가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

스페인이 2050년까지 매년 20만 명 이상의 이주민이 필요하다고 분석하는 배경은 고령화와 저출생입니다. 한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시니어 인구가 급증하면서 요양, 간호, 가사 지원 등 돌봄 분야의 인력 수요는 이미 공급을 크게 앞지르고 있습니다. 내국인 기피 현상이 심화되는 이 분야를 이주 노동력 없이 지탱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책 당국과 사회가 이 문제를 방치할 경우, 결국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돌봄이 절실한 시니어 세대 자신입니다. 이민 문제를 단지 치안이나 문화 충돌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지나치게 좁은 접근입니다. 시니어 돌봄이라는 현실적 과제와 연결하여 이민 정책을 설계해야 할 시점이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원칙 없는 개방은 무질서이고, 기준 없는 배제는 무책임이다

저는 이민 정책에 있어 감정적 배타주의도, 무원칙한 수용주의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스페인의 사례가 보여주듯, 합법화 조치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통합 과정과 사회적 기준의 유지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누구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사회에 편입시킬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 없이 인구 감소와 노동력 부족의 해법으로 이민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책임합니다.

시니어 세대는 수십 년의 경험을 통해 사회의 질서와 안전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 경험이 오늘날 이민 정책 논의에서 가장 필요한 균형추입니다. 지원(Fördern)과 요구(Fordern)의 균형, 즉 필요한 인력을 받아들이되 사회적 기준과 질서를 분명히 요구하는 원칙이야말로, 이 문제를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다루는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