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둘 나세르(Gamal Abd al-Nasir, 1954년 대통령 취임)는 아랍인의 3,000년 역사에서 현대 범아랍주의(Pan-Arabism)를 상징하는 인물이자, 기술(라디오)을 활용하여 아랍 정체성의 가장 강력한 힘인 ‘아사비야'(’asabiyyah, 집단 연대)를 재창조하려 했던 주요 인물로 논의됩니다.
그의 등장은 아랍 역사의 ‘재출현기(Re-emergence: 1800–현재)’의 절정기에 해당하며, 통일의 이상을 추구했지만 결국 분열과 실망이라는 오래된 아랍의 숙명을 재현했다는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1. 시대적 배경과 역할: ‘꿈의 기사'(Knight of Dreams)
나세르는 1952년 이집트 혁명을 주도한 장교 그룹의 일원이었으며, 영국이 지원하는 국왕을 축출하고 영국 군대의 운하 지대 주둔에 맞서 싸우면서 국내외적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 영웅적 이미지 구축: 1956년 수에즈 위기에서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의 침공에 맞서 싸운 일은 나세르의 대중적 이미지를 영웅으로 만들었습니다. 비록 침략군 철수는 소련과 미국의 압력 덕분이었지만, 나세르는 이를 자신의 승리로 포장했습니다,,.
- 새로운 ‘아사비야’의 창조: 나세르는 아랍의 단합을 위한 강력한 새로운 ’asabiyyah를 구축했으며, 이는 언어와 대중매체를 통해 광범위하게 전파되었습니다,.
- ‘꿈의 기사’: 나세르는 ‘꿈의 기사(Knight of Dreams)’로 불렸으며, 그의 미소는 사후에도 그의 사상을 추종하는 세대들에게 영감과도 같은 힘을 발휘했습니다,.
2. 기술 및 정보(라디오)를 활용한 통일 추구
나세르가 범아랍주의를 확산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라는 정보 기술이었습니다,.
- 기술적 기회 포착: 나세르가 대통령이 된 1954년경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상업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고, 1956년 수에즈 위기 무렵에는 저렴하게 보급되었습니다.
- 국경 초월 방송: 라디오 방송은 국경을 무시하고 아랍 세계 전체에 스며들어 “새롭고 짜릿한 범아랍 민족주의”를 전파했습니다,.
- 정치적 구심점: 나세르의 연설은 아랍 공동체를 결집시키는 정치적 구심점이 되었으며, 그의 목소리는 아랍 세계 전역에 “오르가슴과 같은 짜릿함”으로 울려 퍼졌다고 묘사되었습니다.
- 고전적 수사학의 계승: 나세르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대중에게 “즉각적인 사상의 확산”을 위한 수단, 즉 언어의 마법 같은 힘을 활용했습니다,. 그는 고대 카힌(kahin, 선견자), 시인, 설교자들이 사용했던 수사적 전통을 계승하여 대중의 사고방식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언어적 이중성 활용: 그는 이집트 대중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필요에 따라 고급 아랍어(High Arabic)와 구어체(dialect)를 전환하며 연설했는데, 이는 ‘지역 민족주의 대 범아랍주의’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습니다.
3. 통일 노력의 좌절과 역설
나세르는 통일이라는 아랍의 숙명을 가장 강력하게 추구했으나, 결국 그 꿈은 현실의 분열에 부딪혀 좌절되었습니다.
- UAR(아랍 연합 공화국)과 UAS(아랍 연합국)의 실패: 1958년 이집트와 시리아는 UAR를 결성했고, 예멘 왕국이 여기에 참여하며 UAS가 형성되었지만, 이는 44개월 만에 해체되었습니다,,.
-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대립: 1958년 이라크 혁명 후 나세르 지지파가 정권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는 UAR 가입을 거부했습니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드 국왕은 나세르 암살을 모의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나세르와는 적대적이었습니다,.
- 예멘 내전 개입: 1962년 예멘 혁명 발생 시, 나세르는 공화파를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는데,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대리전으로 비화되어 이집트의 “베트남”이 되었으며, 나세르의 군사적 실패를 가중시켰습니다,,.
- 1967년 ‘재앙'(Catastrophe): 1967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이집트가 참패하면서 나세르의 꿈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수사학이 현실에 부딪힌 희생자가 되었으며, 이후 ‘살아 있는 시체(a living corpse)’처럼 되었습니다,.
- ‘마지막 아랍인’: 나세르는 ‘마지막 아랍인(The Last Arab)’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그의 죽음 이후 범아랍주의는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나세르의 등장은 아랍 세계에 희망의 시대(The Age of Hope)를 열었지만, 아랍 역사가 반복적으로 보여주듯이, 정치적 통일(Staatsnation)의 이상은 내부의 분열과 현실 정치의 복잡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세르가 라디오라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 아랍어 메시지를 결속력 있는 힘으로 만든 것은 아랍 문명의 지속적인 동력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