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10일
#098

– 생명을 ‘설계’하는 시대의 도래와 시니어의 물음

요즘 실리콘밸리에서는 ‘슈퍼베이비’를 키워드로 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단순한 유전 질환 선별을 넘어, 자녀가 미래에 조현병이나 암에 걸릴 확률을 예측하고, IQ나 키, 체중 같은 요소까지 사전에 선택하려는 시도들이 실제 서비스화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실현하겠다는 스타트업, 바로 ‘오키드(Orchid)’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오키드는 시험관아기(IVF) 기술과 유전자 분석을 결합하여, 한 배아가 평생 어떤 질환에 걸릴지, 어떤 특징을 가질지를 ‘다유전자 위험 점수’로 제공합니다. 서비스 비용은 한 배아당 약 2,500달러(약 350만 원), 여기에 IVF 2만 달러(약 2,800만 원)를 더하면 최소 3,000만 원 이상이 듭니다. 이러한 서비스는 주로 실리콘밸리의 젊은 고소득층이 주요 고객입니다.

이들은 미래의 자녀에게 ‘가능한 최고의 유전적 스타트’를 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다만, 여기엔 몇 가지 심각한 고민이 따라옵니다.

생명의 ‘공정한 출발선’인가, 새로운 형태의 차별인가?

생명윤리학자들은 이러한 서비스를 단순한 ‘기술 진보’로 보지 않습니다. 유전자를 미리 점수화해 ‘더 나은 배아’를 고르는 일이, 마치 시험 성적순으로 사람을 가르듯 새로운 형태의 차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기술은 소득 수준에 따라 접근성이 갈리는 만큼 ‘유전적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시니어 세대인 우리가 이 흐름을 바라보는 시각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미 시험관 아기, 장기 이식, 줄기세포 치료 같은 생명과학의 발전을 지켜봐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생명을 ‘선택’하고 ‘선별’하는 수준까지 기술이 발전한 사례는 드뭅니다. 과연 이것이 우리가 꿈꾸던 미래일까요?

생명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가장 큰 우려는 “부모가 아이의 유전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라는 표현 이면에 숨겨진 책임과 위험입니다. 한 세대 후, 아이가 성장하여 “왜 나를 선택했냐”고 묻는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또는 유전적으로 낮은 점수를 가진 이들이 사회에서 낙인을 받는 미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시니어 세대의 우리는 이러한 기술이 좋은 목적에만 쓰이기를 바라며, 동시에 이러한 기술이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부담이나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도록 지켜보는 책임도 함께 가져야 합니다.

인간의 가치는 ‘유전자 점수’가 아닙니다

끝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삶의 질과 가치는 유전자 점수나 외형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질병이 있어도, 장애가 있어도, 각자의 생은 모두 고유하고 존엄합니다. 생명을 향한 기술이 존엄성과 다양성을 지켜주는 방식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자녀 세대에게 남겨줘야 할 유산은 ‘완벽한 유전자’가 아니라, 생명의 가치와 삶의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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