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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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는 단순한 씨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천 년 넘는 일본 정신문화의 축소판이며, 동시에 시대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살아남아 온 ‘전통의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지난 10월, 런던 로열 앨버트홀에서 열린 그랜드 스모 토너먼트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일본이 세계에 보여준 정신적 유산의 현장이었습니다.

40명의 스모 선수들이 총합 65톤의 체중으로 무대를 가득 채웠고,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는 힘과 예의, 그리고 세월의 무게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일본 내에서 스모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들리지만, 이번 런던 공연은 오히려 ‘사라져가는 전통의 재발견’이 얼마나 큰 감동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문화’로 다시 서는 일본의 전통

이번 행사는 1991년 이후 30여 년 만에 영국을 찾은 스모 공연입니다.

스모는 본래 일본의 신토(神道) 의식에서 유래했습니다. 풍년을 기원하며 신 앞에서 힘을 겨루는 행위가 스모의 원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단순한 제의에서 벗어나, 일본의 정신문화와 예술이 결합된 하나의 생활 미학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번 런던 무대는 그 상징적 복귀였습니다.

의식이 시작되기 전, 머리를 정갈히 묶고 정화수를 뿌리는 장면에서조차 관객들은 숨을 죽였습니다. 싸움이 아니라, ‘존중과 절제’의 의식임을 직감한 것입니다. 스모의 본질은 상대를 꺾는 데 있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이기는 데 있다는 철학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줄어드는 젊은 세대, 그러나 깊어지는 의미

현재 일본의 프로 스모 선수는 600명 남짓입니다. 1980년대에는 1,000명을 넘겼지만, 지금은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어린이 스모 인구 역시 빠르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문화와 글로벌 스포츠의 확산 속에서, 스모는 ‘구시대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생긴 것이지요. 그러나 런던의 무대는 그 흐름을 뒤집는 신호였습니다.

관객 중에는 젊은 층도 적지 않았고, 전통 의식의 정교함과 선수들의 집중력은 새로운 감탄을 이끌어냈습니다. 일본 내에서는 사라져가는 전통이, 오히려 해외에서 새로운 세대에게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온 셈입니다.

이 점은 한국의 시니어 세대가 곱씹을 만한 대목입니다.

우리 사회 또한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있지만, 한 세대가 이어온 기술과 예절, 마음가짐이 여전히 다음 세대에게 필요한 가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노년의 힘은 ‘지켜온 것’에서 나온다

스모 선수들의 훈련은 혹독합니다. 하루 6시간 이상 체력 훈련을 하고, 1년에 15회 이상 대회를 치릅니다. 그럼에도 연봉은 약 1억 5천만 원에서 3억 5천만 원(£90,000~£200,000) 정도이며, 체중 관리와 당뇨 위험, 평균 수명 단축이라는 부담까지 안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왜 여전히 이 길을 택할까요?

그 이유는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전통을 지키는 자부심입니다. 그들의 삶은 마치 오랜 장인과 같습니다. 손에 익은 도구를 내려놓지 못하는 장인처럼, 스모 선수도 신념과 정신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시니어 세대에게 이 모습은 매우 익숙한 풍경일 것입니다.

전후(戰後) 세대를 거쳐 산업화를 이끌고, 가족과 사회를 위해 한평생을 바쳐온 우리의 부모 세대 역시 같은 정신으로 살아왔습니다. 눈부신 성취 뒤에는 ‘묵묵히 버틴 시간’이 있었고, 그것이 바로 전통의 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세대를 잇는 무대, 런던의 스모

로열 앨버트홀의 무대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시간의 교차점이었습니다. 한편에는 일본의 전통 의상과 도효(토너먼트 경기장), 다른 한편에는 디지털 카메라로 기록하는 영국의 관객들이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장면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았습니다.과거를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기술과 감각으로 그것을 재해석하는 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문화의 형태입니다.

스모가 런던에서 박수를 받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옛것이 낡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

이 정신은 예술뿐 아니라, 노년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새로운 세대가 등장할수록, 이전 세대의 경험과 인내는 더 깊은 가치를 갖습니다. 그것이 바로 ‘전통의 에너지’입니다.

스모의 ‘정중한 싸움’이 주는 교훈

스모는 경기이자 의식입니다.

경기장에 오르기 전, 선수들은 신에게 예를 올리고 소금을 뿌립니다. 이는 단순한 위생적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정화’를 상징합니다. 경기 중에도 승패를 떠나 서로를 존중하며, 경기 후에는 반드시 절을 합니다. 이 의식의 연속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사회적 경쟁이 치열할수록, ‘이기는 법’보다 ‘예의를 지키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

노년의 품격이란, 바로 이런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문화는 살아 있는 기억이다

이번 런던 공연은 단지 일본의 한 종목이 세계에 소개된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통이 미래와 만나는 장면’이었습니다. 관객들은 경기를 보며 단순한 힘의 대결보다, 그 속에 깃든 조용한 정신의 울림을 느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노년기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엔 늦은 시기가 아니라, 쌓아온 경험을 전할 시기입니다. 젊은 세대가 효율과 속도를 추구할 때, 시니어 세대는 그들에게 ‘느림의 의미’와 ‘의식의 깊이’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후반전을 아름답게 만드는 지혜입니다. 스모의 의식은 단 한 번의 승패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매일의 싸움, 매일의 절제, 그리고 매일의 존중을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태도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이들이 있어, 문화는 이어지고 세상은 더 깊어집니다.

런던의 도효 위에서 울린 북소리는,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였습니다 —

“지켜온 것이야말로, 미래를 만드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