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8일
10-28-0600#156

– 시니어를 위한 절주의 지혜

“하루 한두 잔은 괜찮겠지.”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특히 은퇴 후의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저녁 식탁에 작은 와인잔 하나쯤은 인생의 낭만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예일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 공동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는 이 ‘작은 습관’이 우리 뇌의 건강에 결코 작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240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소량의 음주조차 장기적으로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결론을 제시했습니다. 평생에 걸친 음주 경향을 유전적 변수와 결합해 분석한 결과, ‘자주 마시는 사람’은 ‘거의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치매 발병 확률이 약 15% 높게 나타났습니다.

 “적당히 마시면 좋다”는 오래된 통념의 붕괴

지금까지는 “적당한 음주는 심혈관 건강에 좋다”거나 “한두 잔은 인지 기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왔습니다. 실제로 과거 일부 연구에서는 와인 속 폴리페놀이나 맥주의 비타민B 성분이 혈류를 개선해 뇌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의 공동 저자인 예일대의 캐서린 겔터너(Catherine Geltner)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기존 인식을 반박했습니다.

그녀는 “과거 나도 하루 한두 잔씩 마셨지만, 누적된 연구 결과를 보며 스스로 음주를 중단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적은 양이라도 장기적으로 뇌의 구조적 변화를 유발하고, 그 결과 기억력 저하나 인지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뇌영상 연구에 따르면, 꾸준한 음주자는 뇌의 회색질(gray matter) 부피가 더 작게 나타나며, 이 부위는 기억력과 의사결정, 학습 기능을 담당합니다.

즉, 매일의 소소한 한 잔이 세포 수준에서는 ‘퇴행’의 속도를 조금씩 높이고 있는 셈입니다.

알코올은 ‘신경독’이다

스탠퍼드대 나탈리 자르(Natalie Zahr) 교수는 “술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신경세포를 직접 손상시키는 ‘신경독(neurotoxin)’”이라고 단언합니다.

알코올은 일시적으로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교란시키며, 반복적인 노출은 해마(hippocampus)와 전두엽(prefrontal cortex)에 미세 손상을 남깁니다.

이 두 영역은 각각 ‘기억의 저장소’와 ‘판단력의 중심’으로, 노년기에 가장 취약한 부위입니다.

과음자는 물론, ‘습관적 음주자(habitual drinker)’ 역시 비슷한 위험에 노출됩니다.

자르 교수는 “뇌의 백질(white matter)이 손상되면, 신경 신호의 전달 속도가 느려지고 결국 반응성과 집중력 저하로 이어진다”고 경고합니다.

이러한 손상은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질환의 전조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나이 들수록 약해지는 회복력

젊을 때는 술을 마셔도 다음날 회복이 빠릅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간의 대사 속도와 신경 재생 능력이 모두 떨어집니다. 특히 뇌세포의 손상은 회복되지 않거나, 회복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자르 교수는 “전두엽의 회복에는 수개월이 걸리고, 이 기간 동안 충동 조절 능력과 의사결정력이 감소한다”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가볍게 마시자’는 생각으로 시작된 음주가 점차 빈도를 높이고, 결국 만성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노년기의 음주는 단순한 여가 습관이 아니라 뇌 건강의 중대한 변수로 작용합니다.

 “마시지 않기보다, 덜 마시는 것이 먼저”

그렇다면 술을 완전히 끊어야만 할까요? 전문가들은 “현실적 절주”를 권장합니다.

‘소버 옥토버(Sober October)’나 ‘드라이 재뉴어리(Dry January)’처럼 한 달 단위로 금주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습관의 점진적 변화’입니다.

예를 들어,

주 5회 마시던 사람은 주 2회로 줄이기, 술 대신 무알코올 음료로 대체하기, 잠자기 전이 아닌 식사 중으로 시간대 조정하기 등 현실적인 변화부터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또한 의료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자신의 간 기능, 혈압, 뇌 건강 상태를 점검하며 절주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뇌가 보내는 ‘적신호’에 귀 기울이기

노년기에는 단순한 피로나 건망증이 치매의 초기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술을 자주 마신다면 이러한 증상이 더 빨리, 더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자주 깜빡하고, 방향 감각이 떨어지고,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면 음주 습관을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겔터너 교수는 “이 연구의 핵심은 사람들에게 마시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위험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즉, 절주의 목적은 도덕적 금욕이 아니라 인지 기능의 보호입니다.

시니어에게 절주는 ‘기억의 투자’다

노년의 음주는 단순히 사교적 행위가 아니라 ‘건강 자산’을 잠식할 수 있는 요인입니다. 하루 한두 잔이 당장 즐거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그 대가는 잃어버린 이름, 흐릿해진 기억, 그리고 사라지는 자기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도 있습니다. 뇌는 완전히 닫힌 기관이 아닙니다. 절주를 시작하면, 뇌의 회색질 밀도와 인지 반응 속도가 서서히 회복된다는 연구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술을 줄이는 행동 하나가 곧 기억력 회복의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 맨정신’의 품격

은퇴 후의 삶은 단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나답게’ 사는가의 문제입니다. 시니어의 절주는 스스로의 품격과 존엄을 지키는 일입니다. 한 잔의 위로가 아니라, 하루의 명료함이 우리의 미래를 더 선명하게 그려줍니다.

“오늘 한 잔 덜 마시는 용기”가 내일의 나를 지켜주는 가장 현명한 선택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