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7개월 대 아시아 평균 4개월… 미국·영국·프랑스·독일·북유럽·일본이 걸어온 길을 함께 살핍니다
좋은 일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정작 그 일을 시작하는 출발선에서 가장 높은 문턱을 마주합니다. 시민단체 하나를 법인으로 세우는 데 한국은 약 일곱 달이 걸리는데, 이는 아시아 17개국 평균인 넉 달의 두 배에 가깝습니다. 더욱이 한국의 비영리 종사자들은 관련 법과 제도를 이해하고 따르기가 어렵다고 답한 비율이 아시아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이 문턱의 뿌리는 1958년 제정된 우리 민법 제32조에 있습니다. 영리 아닌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는 주무관청의 허가를 얻어야 법인이 될 수 있다고 정한 이 한 문장이, 60여 년 동안 한 번도 손대지 않은 채 2026년 들어 헌법재판소의 판단대에 올랐습니다. 마침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는 오는 6월 17일 서울 성수동에서 비영리 법인 설립의 미래를 주제로 공개 포럼을 엽니다. 아시아 17개국의 공익활동 환경을 비교한 국제 연구 두잉 굿 인덱스(Doing Good Index) 2026의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제도가 서 있는 자리를 짚는 자리입니다.
먼저 용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단체가 법적 인격을 얻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른데, 크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행정청의 재량에 따라 허가를 받아야 하는 허가주의(許可主義), 법이 정한 요건만 갖추면 등기로 자동 인정되는 준칙주의(準則主義), 그리고 등기조차 필요 없는 자유설립주의(自由設立主義)입니다. 여기에 요건을 갖추면 행정청이 반드시 승인해야 하는 인가주의(認可主義)가 중간에 자리합니다.
한국 제도의 핵심은 바로 그 허가라는 두 글자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대법원은 비영리법인 설립 허가를 행정청의 정책적 판단에 따른 재량행위로 보아 왔습니다. 어떤 요건을 갖추면 허가를 내주어야 하는지 법이 명확히 정해 두지 않은 탓에, 법인이 될 수 있는지가 사실상 담당 공무원의 판단에 맡겨져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청소년의 사회 참여를 목표로 활동해 온 한 단체가 2024년 설립 허가를 거부당했고, 서울행정법원은 2025년 12월 민법 제32조 자체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습니다. 대형 법무법인 열두 곳의 변호사 예순여섯 명이 공익 대리인단으로 참여한 이례적인 사건입니다. 한 법학자는 비영리법인 설립에 허가주의를 유지하는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면 중국이나 러시아 등 일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요. 가장 자유로운 쪽에는 북유럽이 있습니다. 스웨덴의 비영리 결사는 법인격을 얻기 위해 정부에 등록할 의무 자체가 없으며, 세 사람 이상이 모여 정관을 채택하고 이사회를 꾸리는 순간 결사로 인정됩니다. 프랑스는 1901년 결사법에 따라, 두 사람 이상이 모여 관청에 신고하기만 하면 법인격을 가진 결사가 됩니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은 또 다른 공통점을 보입니다. 법인이 되는 일과 공익성을 인정받는 일을 분리한 것입니다. 미국에서 비영리단체를 세우는 일은 영리회사 설립과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간단하지만, 기부금 세제 혜택을 받는 501(c)(3) 자격은 연방 국세청의 까다로운 심사를 따로 거쳐야 합니다. 신청 수수료만 600달러(약 89만 원)에 이르고 심사에도 수개월이 걸립니다. 진입 문턱을 낮춘 미국에는 약 180만 곳의 비영리단체가 활동하며, 이 부문이 고용하는 인원만 1,280만 명으로 제조업에 맞먹습니다. 독일 역시 관할 지방법원 등기소에 등기하면 법인격이 생기되, 세제 혜택과 직결되는 공익성은 세무서가 별도로 판단합니다. 등록 비용은 75유로(약 13만 원)에 불과합니다. 영국은 자선위원회라는 독립 기구가 등록과 감독을 한곳에서 맡아 비영리 부문을 일관되게 관할합니다.
특히 눈여겨볼 나라는 일본입니다. 같은 대륙법 전통에서 비슷한 민법으로 출발했지만, 일본은 2008년 공익법인 제도를 개혁하며 주무관청의 설립 허가주의를 폐지하고 준칙주의로 전환했습니다. 동시에 공익성 인정은 부처 공무원이 아니라 전문가로 구성된 합의제 기구가 맡도록 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설립의 문턱을 낮추면서도, 재단에 평의원회를 의무화하는 등 운영의 책임성은 오히려 강화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줄을 세워 보면 흐름이 분명해집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설립의 문은 객관적 요건만으로 폭넓게 열어 두되 공익성과 세제 혜택은 별도의 단계에서 엄격히 심사하는 쪽으로 움직여 왔고, 한국만이 설립 단계에서부터 행정청의 재량이 작동하는 허가주의의 한쪽 끝에 홀로 가까이 서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허가주의의 문제는 제도가 지나치게 엄격해서가 아니라, 그 판단이 예측하기 어려운 행정 재량에 맡겨져 있다는 데 있습니다. 명확한 법적 기준 없이 행사되는 재량은 법치의 본령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설립의 문턱을 객관적 기준으로 바꾸는 일은 규제를 푸는 것이라기보다, 자의적 권한을 법의 틀 안으로 되돌리는 일에 가깝습니다. 다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고 그 결과를 단정할 수는 없는 만큼, 개정의 폭과 시기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원칙은 굽힐 수 없습니다. 문을 넓힌다고 해서 책임까지 가벼워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설립은 자유롭게 열되 평의원회와 재무 기준으로 운영의 건전성을 다잡은 것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방향도 설립은 더 자유롭게, 운영은 더 책임 있게라는 두 축의 균형입니다. 자유로운 진입과 투명한 감독은 맞바꿀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짝입니다. 무엇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일수록 돌봄과 복지, 지역 공동체를 떠받치는 비영리의 역할은 더욱 커집니다. 비영리법인이 더 쉽게 태어나고 더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는 제도는, 결국 우리 사회가 시니어 세대를 비롯한 이웃을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가 하는 물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끝으로 시니어 독자께 실용적인 당부를 덧붙입니다. 은퇴 이후 동호회나 봉사 모임, 작은 단체를 꾸리려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다만 단체를 만든다고 해서 곧바로 비영리법인이 되는 것은 아니며, 법인 설립과 공익단체 등록, 기부금 영수증 발급 자격은 절차가 각각 다릅니다. 또 어느 단체에 기부하실 때는 그곳이 공익법인으로 정식 등록되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인지 국세청 공시 자료 등으로 한 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절차가 까다로운 사안일수록 혼자 판단하기보다 중간지원조직이나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시기를 권합니다. 작은 모임에서 출발하더라도, 제도를 잘 이해하고 활용하면 그 뜻을 오래도록 든든하게 이어 갈 수 있습니다.
출처: 법률신문; 두잉 굿 인덱스(Doing Good Index) 2022·2026, 아름다운재단·CAPS;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더나은미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국 국세청(IRS); 미국 재단협의회; 영국 자선위원회; 프랑스 공공서비스; 독일 민법전; 노르웨이 브뢰뇌이순 등록소; 스웨덴 비영리 안내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