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가장 명석하고 재능이 뛰어난 이들은 자신의 삶을 어디에 쓰고 있을까요. 이름난 대학을 나온 인재들은 사람들이 광고를 한 번이라도 더 누르게 할 방법을 궁리하고, 가장 영민한 두뇌들은 복잡한 금융 상품을 설계하는 데 젊음을 바칩니다. 정작 기후와 빈곤, 불평등처럼 우리 모두의 삶을 좌우하는 문제 앞에서는 좀처럼 사람이 모이지 않습니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뤼트허르 브레흐만(Rutger Bregman)은 새 책을 통해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를 멈춰 세웁니다. 시간과 재능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헛되이 흘려보내는 자원이 아니냐는 물음입니다.
그는 보편적 기본소득 논의에 불을 지핀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과, 인간 본성의 선함을 재조명한 《휴먼카인드》로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가입니다. 미국의 한 유력 일간지는 그를 두고 한층 정치적이고 급진적인 성향의 대중 지식인이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신간에서 내놓는 화두는 《모럴 앰비션(Moral Ambition, 선한 야망)》입니다. 더 높은 연봉과 안정된 자리를 좇는 대신, 자신의 능력과 자원을 가장 시급하면서도 방치된 문제를 푸는 데 쏟겠다는 의지를 가리킵니다.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까닭은 구호에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예제 폐지에 일생을 바친 한 영국인은 본래 라틴어 논문 공모전의 영예를 노리다 노예무역의 참상에 눈을 떴고, 그 참상을 끝낼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 한 편을 계기로 세계적 규모의 말라리아 퇴치 단체를 일군 평범한 회사원도 있습니다. 미국의 한 소비자 운동가는 젊은이들에게 남은 시간이 2,500주, 길어야 3,000주에 지나지 않는다며 재능을 헐값에 팔지 말라고 일갈합니다. 저자는 선한 야망이 마치 전염되듯 번진다고 말합니다. 책에 인용된 한 사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의 어느 마을에서 공동체가 존경하던 인물이 도움을 청하자 요청받은 이의 96퍼센트가 행동에 나섰다고 합니다(책에 소개된 일화로, 별도의 확인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재능 있는 이들은 어찌하여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에는 좀처럼 뛰어들지 않을까요. 저자는 그 원인을 더 높은 보상과 안정된 경로가 주는 강력한 끌림에서 찾습니다. 동시에 선함을 맹목적 희생이나 소극적 자선쯤으로 여기는 오랜 통념도 한몫합니다. 브레흐만은 이 통념을 뒤집습니다. 명석하고 재능 있는 사람일수록 그 능력을 이타적 목적에 연결할 때 비로소 세상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참된 성공은 무엇을 쌓아 올렸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세상에 보탰느냐로 가늠된다는 명제가 책 전체를 관통합니다.
참된 성공은 ‘무엇을 세상에 보탰느냐?’
이 화두는 한 가지 점에서 시니어 독자께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인생의 적지 않은 길을 이미 걸어오신 분들에게, 남은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이냐는 물음은 한결 더 무겁게 내려앉기 때문입니다. 지식과 경험, 사람과의 인연, 더러는 모아 온 재산까지, 평생에 걸쳐 쌓아 오신 것이 적지 않습니다. 저자의 시선을 빌리면, 인생의 후반은 기력이 저무는 내리막이 아니라 그동안 쌓은 것을 비로소 세상에 돌려주는, 기여가 가장 환하게 빛나는 계절이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공동체가 우러르는 어른의 한마디는 그 어떤 호소보다 멀리, 그리고 깊이 번집니다. 세월이 쌓아 준 신망과 분별을 지닌 시니어야말로 선한 야망을 가장 넓게 퍼뜨릴 수 있는 자리에 서 계신 까닭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일러두고자 합니다. 이 책이 본래 겨냥한 독자는 평생의 직업적 시간을 어디에 투자할지 고민하는, 이제 막 진로를 설계하는 세대입니다. 소개되는 사례도 대개 미국과 유럽의 인물들입니다. 그러니 시니어 독자께서는 ‘하던 일을 바꾸라’는 권유를, ‘내게 남은 시간과 지혜와 자원을 이제 어디에 다시 쓸 것인가’라는 자신의 물음으로 바꾸어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그 한 번의 옮겨 읽기만 더하신다면, 단 한 번뿐인 삶을 무엇에 바칠 것인가라는 이 책의 질문은 어느 세대보다 지금 이 시기에 절실하게 울립니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대목은, 선의에도 효율과 우선순위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균형 감각입니다. 재능과 야망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 그것으로 무엇을 어떻게 이루느냐가 핵심이라는 지적은 냉정하고 또 옳습니다. 따뜻한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며, 한정된 시간과 힘을 가장 절실한 곳에 합리적으로 배분할 때 비로소 선한 야망은 결실을 맺습니다. 이는 오랜 질서와 공동체의 안녕을 지켜 온 시니어 세대의 분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무엇이 진정 중한지를 가려내는 안목이야말로,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가장 값진 유산일 것입니다. 안목을 넘어 실천하는 이야말로 진정 성공한 삶을 살아간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