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최신 소설이 던지는 질문
최근 독일 문단에서 고령화 시대의 가장 예민한 화두인 치매와 삶의 마지막 순간을 정면으로 다룬 소설 한 편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시니어 세대에게 던지는 질문은 결코 낯설지 않습니다. 기억이 흐려지고 자아가 조금씩 흩어지는 순간에도, 인간은 여전히 존엄을 지킬 수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독일의 유력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Süddeutsche Zeitung)은 지난 9월 2일자 문화면에서 미국 작가 엠마 클라인(Emma Cline)의 세 번째 장편소설 《스위스로(In die Schweiz)》를 비중 있게 조명했습니다. 니콜라스 프로인트(Nicolas Freund) 기자가 집필한 이 서평은 소설을 “끔찍하도록 아름답다”는 표현으로 극찬하며 마무리됩니다. 소설의 주인공 데이비드는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고령의 남성으로, 조수와 함께 런던을 거쳐 스위스 취리히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조직적으로 시행되는 조력사(Sterbehilfe), 즉 존엄사의 일종인 스스로의 삶을 마감하는 절차입니다. 병이 자신의 정신을 완전히 앗아가기 전, 그는 런던의 딸과 손자를 마지막으로 만나고, 오래전 소원해진 학창 시절 친구를 찾아가 사과하려 합니다.
이 작품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소재 자체보다 서술 방식에 있습니다. 올해 37세의 젊은 작가인 클라인은 자신보다 나이가 두 배 이상 많고 인지 기능이 쇠퇴해가는 인물의 내면을 3인칭 시점으로 형상화했습니다. 소설은 짧은 문단과 파편화된 장면들로 구성되어, 독자 스스로가 주인공처럼 기억의 공백과 혼란을 함께 체험하도록 이끕니다. 평론가들은 이러한 서술 기법이 치매를 앓는 이의 의식 세계를 관음증적 시선 없이, 그러나 어떠한 미화도 없이 담아낸 드문 문학적 성취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영미권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후보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이른바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하여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스위스를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처럼 본인의 의사에 따라 적극적으로 삶을 마감하는 조력사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는 이미 상당한 규모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정확한 최신 통계는 별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 사회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본지는 이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선택권 확대라는 관점만으로 바라보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는 존중받아 마땅하나, 그 결정이 온전히 자유로운 것이 되려면 무엇보다 가족과 공동체의 돌봄, 그리고 국가의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먼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돌봄의 부담이나 경제적 곤궁이 죽음을 앞당기는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사회의 책무일 것입니다. 소설 속 데이비드가 삶을 정리하기에 앞서 딸과 옛 친구를 마지막으로 찾아가듯, 존엄한 마무리의 출발점은 제도의 확대에 앞서 관계의 회복과 곁을 지키는 이들의 존재에 있음을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억이 흐려지는 순간에도 인간의 존엄은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존엄을 지키는 길이 삶을 끝내는 제도의 확대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의 가치와 촘촘한 돌봄 체계 안에서 그 답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때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