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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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취리히주 의회, 찬성 92 반대 82로 개인기기 전면 금지 가결

스위스 취리히주에서 날아온 소식 한 토막이 교육 현장의 오래된 질문을 다시 소환했습니다. 아이들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어놓는 일이 과연 국가가 나설 사안인가, 아니면 가정과 학교의 자율에 맡길 문제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손주 세대의 학습과 정서 건강을 지켜보아 온 시니어 독자라면 결코 낯설지 않은 고민일 것입니다.

지난 9월 1일 자 스위스 유력지 노이에취르허차이퉁(Neue Zürcher Zeitung, NZZ) 보도에 따르면, 취리히주 의회는 우파 정당인 스위스 국민당(Schweizerische Volkspartei, SVP)이 발의한 학교 내 개인 디지털기기 사용 전면 금지 포스툴라트(Postulat, 주 정부에 정책 검토를 요구하는 구속력 있는 건의안)를 찬성 92표, 반대 82표로 가결했습니다. 이 규정은 유치원부터 9학년, 우리로 치면 중학교 과정까지의 학생들에게 적용되며, 수업 시간은 물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방과 후 돌봄 교실을 포함한 학교 전 구역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 노트북 등 개인 소유 기기 사용을 금지합니다. 다만 교사가 수업 목적으로 명시적으로 활용하도록 지시한 기기는 예외로 인정됩니다.

찬성 진영을 이끈 SVP 의원단 대표 토비아스 바이드만(Tobias Weidmann)은 미국의 관련 연구를 근거로 스마트폰 과다 노출이 우울감과 수면 부족, 비만 등 청소년 건강 문제와 연관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학교 안에서만이라도 모든 아이에게 이른바 디지털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며, 학습 환경에 대한 책임은 결국 정치의 몫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아르가우, 발레, 바젤슈타트, 니트발덴 등 스위스의 다른 여러 주는 이미 유사한 금지 조치를 시행하고 있어, 이번 결정이 고립된 사례는 아닙니다.

반면 반대 진영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대안진보당(Alternative Liste, AL) 소속 다비드 가르시아 누녜스(David Garcia Nuñez) 의원은 이번 조치를 온정주의적(paternalistisch) 발상이라 비판하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률적 금지가 아니라 스스로 절제하고 활용할 줄 아는 디지털 역량(Digitalkompetenz)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많은 학교가 이미 자체 규정으로 문제를 관리하고 있는 만큼 주 차원의 획일적 통제는 불필요하며, 진짜 규제 대상은 학생이 아니라 거대 플랫폼이어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자유민주당(FDP)과 녹색자유당(GLP), 복음국민당(EVP) 역시 대체로 이 입장에 동조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사회민주당(SP)과 녹색당(Grüne)은 당론이 갈렸는데, SP는 명확한 규칙이 모두의 부담을 덜어준다며 찬성한 반면 녹색당은 학교 자율성 침해를 우려하며 반대했습니다.

이번 논쟁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SVP 소속 마르쿠스 보프(Markus Bopp) 의원의 발언입니다. 그는 이 사안이 전통적인 좌우 진영 논리를 벗어난다는 점을 정확히 짚어내며, 학교에서 술과 담배를 금지하듯 중독성 높은 스마트폰 역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쉬는 시간에 화면 대신 탁구와 축구를 즐기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는 사례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학교가 최근 다시 아날로그적 접근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사례도 함께 언급되었습니다.

표결 이후 실비아 슈타이너(Silvia Steiner) 취리히주 교육장관은 이 건의안을 검토해 보고서를 작성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스마트폰 문제의 일차적 책임은 어디까지나 학부모에게 있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 발언은 이번 논쟁의 균형점을 시사합니다. 국가와 학교가 최소한의 울타리를 세우되, 가정의 교육적 책임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안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은 작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도 학교별로 스마트폰 소지 및 사용에 관한 자율 규정을 운영하고 있으나, 지역과 학교마다 기준이 제각각이어서 혼선이 빚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시니어 세대는 활자와 대면 소통을 중심으로 집중력과 절제를 체득해 온 경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손주 세대에게 옛 시절의 향수가 아니라, 화면에 잠식된 학습 환경을 되돌아보게 하는 실질적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세대 간 갈등의 구도가 아니라, 시니어의 축적된 지혜와 학부모 세대의 실천이 맞물릴 때 비로소 실효성 있는 대안이 마련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취리히주의 결정은 규제 만능주의로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수업 목적 기기는 예외로 두고, 궁극적 책임은 가정에 두는 균형 잡힌 설계이기 때문입니다. 학교라는 공간이 최소한의 절제와 집중이라는 전통적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는 원칙은 존중받아 마땅하되, 그 실행은 획일적 금지가 아니라 합리적 예외와 부모의 책임을 함께 아우르는 방향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 역시 감정적 찬반이 아닌, 이러한 균형 잡힌 기준 마련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