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09일
11395_22469_4615

하늘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남긴 질문 

최근 미국 사회에서는 정부 효율화라는 명분 아래 대대적인 공공 부문 인력 감축이 추진되면서, 정작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전선 인력까지 감축 대상에 오르는 사례가 잇달아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미국만의 사정이 아닙니다. 저출생·고령화 속에서 공공서비스 효율화를 고민해야 하는 한국 사회 역시, 숙련된 경력자의 경험을 어떻게 평가하고 대우할 것인가라는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가 심층 취재한 미국 산불 진화 특수부대 ‘스모크점퍼(Smokejumper)’의 이야기는 이 질문에 대한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87년 역사, 낙하산으로 산불에 뛰어드는 사람들

스모크점퍼는 도로가 없는 험준한 오지에서 산불이 발생했을 때, 수송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소방대원을 말합니다. 미국 알래스카를 비롯해 서부 지역 아홉 곳의 기지에 소속되어 있으며, 1939년 워싱턴주에서 하나의 실험으로 시작된 이래 87년 동안 약 6,000명이 이 직업을 거쳐 갔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훗날 외교관, 대학교수, 우주비행 관계자로 성장한 이들도 있을 만큼, 혹독한 훈련과 실전 경험이 만들어 내는 인재의 폭은 넓습니다.

신참 대원은 오십 킬로그램에 가까운 배낭을 메고 장거리를 주파하는 등 5~6주에 걸친 극한 훈련을 거치며, 그중 3분의 1가량이 중도에 탈락합니다. 이렇게 살아남은 이들은 이후 수십 년에 걸쳐 현장 판단력을 쌓아 갑니다. 32년의 경력을 지닌 78세의 시니어 베테랑 로드 다우(Rod Dow)는 은퇴한 뒤에도 여전히 알래스카 기지를 찾아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고, 37년 차 베테랑이자 정년퇴직을 앞둔 빌 크레이머(Bill Cramer) 대장은 산불 현장에서 신참들에게 지휘권을 넘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 조직은 경력에 따른 서열이 아니라, 그날 가장 준비된 사람이 지휘를 맡는 구조를 87년째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효율화의 이름 아래 흔들린 안전망

그런데 2025년, 미국의 정부효율성부(DOGE)가 예산 절감을 이유로 연방 인력 감축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화재 감시원과 스모크점퍼를 포함하는 ‘산림 기술자’ 범주 전체가 한때 감축 명단에 오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내무부 산하 토지관리국의 소방 지도부가 공공안전 인력은 감축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반발한 끝에 스모크점퍼들은 직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웃한 몬태나주에서는 산림청 소속 산림 기술자 약 360명에 대한 해고 지시가 그대로 집행되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화재 진화 대원으로도 근무하는 인력으로, 스모크점퍼의 초임 시급은 약 25달러(약 3만5,000원), 초과 근무 수당은 시간당 약 38달러(약 5만3,000원) 수준에 그친다는 사실이 함께 알려지며 논란을 키웠습니다. 이 감축에 항의했던 4년 차 대원 샘 포스태그는 결국 소속 기관으로부터 사실상의 인사 보복을 겪었고, 이후 정치에 투신해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경험은 비용이 아니라 자산입니다

이 사건이 보여 주는 구조적 문제는 명확합니다. 효율화 정책이 인력을 단순한 숫자와 직급명으로만 분류할 때,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위기 대응 판단력이라는, 결코 예산 항목으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를 놓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스모크점퍼 조직이 87년간 유지해 온 힘은 다름 아닌 베테랑에서 신참으로 이어지는 경험의 전수 체계였습니다. 이 체계를 정교하게 들여다보지 않은 채 일률적인 잣대로 인력을 재단한다면, 정작 위기의 순간 그 공백을 메울 방법이 없습니다.

한국 사회를 향한 시사점

이는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교훈입니다. 시니어 세대를 단순한 복지 수혜자나 인건비 부담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정작 이들이 오랜 세월 축적해 온 위기 대응 능력과 조직 운영의 지혜라는 자산을 사장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독일 사회정책에서 강조되어 온 지원(Fördern)과 요구(Fordern)의 균형 원리는 여기서도 유효합니다. 정부는 숙련된 인력에게 정당한 지원과 예우를 제공하는 동시에, 합리적인 성과 기준과 책임을 요구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만을 앞세운 정책은 반드시 부작용을 낳습니다.

전통과 안전을 지키는 합리적 기준이 필요합니다

산불 앞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한 사회가 안전과 질서를 어떻게 지켜 낼 것인가에 관한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무분별한 감정적 감축도, 무비판적인 조직 존속도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오랜 세월 검증되어 온 경험과 질서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시대 변화에 걸맞은 합리적 기준으로 공공서비스를 재정비하는 균형 잡힌 개혁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입니다. 시니어 세대의 경험을 사회적 자산으로 존중하는 문화가 뿌리내릴 때, 우리 사회의 안전망 역시 더욱 굳건해질 것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