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브웨 작가 데이비드 트루어가 프린스턴에서 발견한 역설
미국 미네소타주 리치 레이크(Leech Lake) 인디언 보호구역 출신의 작가 데이비드 트루어(David Treuer)가 최근 뉴욕타임스 인터내셔널 에디션에 기고한 개인적 회고는, 소수자에게 사회가 오랫동안 강요해 온 ‘고통의 서사’라는 관행을 정면으로 되짚어 보게 합니다. 오지브웨(Ojibwe) 부족 출신인 그는 1985년 봄 프린스턴 대학교 합격 통지를 받고, 그해 가을 어머니의 승합차를 타고 뉴저지로 향하면서 가난과 편견으로 얼룩진 과거를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현실은 기대와 전혀 달랐습니다.
트루어는 백인 아버지를 두었다는 이유로 정작 고향 보호구역에서조차 ‘진짜 인디언’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프린스턴 캠퍼스에서는 인디언이라는 사실만으로 동정 어린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그의 집에 전기와 수돗물이 들어오고 알코올 중독 문제도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그에게 쏠렸던 관심은 순식간에 식어버렸습니다. 그는 동정받을 이유가 없는 평범한 존재가 되는 순간 오히려 주변에서 소외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고백합니다. 한 백인 교수는 그에게 학자와 전통 치료사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는데, 이는 명문 대학의 지식사회조차 소수자를 정형화된 틀 안에서만 이해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트루어로 하여금 한동안 자신의 출신 배경을 실제보다 훨씬 비참하게 과장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나 자동차를 처음 본 순간의 두려움 같은 이야기를 지어낼수록, 주변 사람들은 그것을 더욱 진실로 받아들였다고 그는 전합니다. 그는 미국의 건국 문서에서 인디언이 한때 ‘무자비한 야만인’이라는 표현으로만 잠시 언급되었다가 본문에서 제외되었던 역사를 함께 짚으며, 이러한 법적·역사적 배제가 소수자를 결핍과 고통으로만 규정해 온 뿌리 깊은 인식과 맞닿아 있다고 지적합니다. 공교롭게도 1980년대 들어 다수의 보호구역에 카지노 산업이 들어서며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했고, 리치 레이크 역시 생활 수준이 다소 개선되고 있었습니다. 트루어는 그제야 자신이 거짓 서사를 지어냈을 뿐 아니라, 그 거짓 서사를 소비하는 사회 전체의 일부였음을 깨달았다고 회고합니다.
주목할 대목은 트루어가 결국 ‘고통받는 인디언’이라는 서사도, 그 반대편에 놓인 ‘역경을 극복한 특별한 인디언’이라는 서사도 함께 거부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대학원 과정을 중도에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사냥과 낚시, 자작나무 공예 같은 화려하지 않은 생업을 이어가며 평범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택했습니다. 그는 보호구역 사람들의 삶이 결핍과 비극이 아니라 이혼, 자동차 대출, 소소한 성취와 실패로 채워진 지극히 평범하고 복잡한 인간의 삶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그 평범한 일상 한가운데서, 첫 소설의 출간 제안을 전화 자동응답기로 확인했던 순간의 벅찬 기쁨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확인했다고 담담히 글을 맺습니다.
이 회고가 시사하는 바는 특정 소수민족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어떤 집단이든 사회가 정해 놓은 단일한 틀, 즉 동정받아야 할 약자이거나 혹은 역경을 극복한 영웅이어야 한다는 이분법에 갇히는 순간, 그 구성원 개개인이 지닌 평범하고 온전한 삶의 존엄은 오히려 지워지기 쉽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시니어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줍니다. 시니어를 일방적인 돌봄의 대상으로만 규정하거나, 반대로 특별한 성공 사례로만 조명하는 방식 모두, 정작 대다수 시니어가 살아가는 평범하고 존엄한 일상의 가치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회고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어떤 집단에 대한 연민이나 배려도, 그 집단을 정해진 서사 안에 가두는 순간 또 다른 형태의 편견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존중은 특정한 이야기를 요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평범한 삶과 그 삶이 뿌리내린 공동체적 유대, 그리고 개인의 성실한 노력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감상적인 동정도, 무비판적인 영웅화도 아닌,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는 합리적 기준이야말로 소수자와 시니어를 비롯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를 대하는 데 있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라 할 것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