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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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영국 하원에서 말기 환자의 조력자살을 허용하려던 법안이 반대 286표, 찬성 270표로 부결되었습니다. 열여섯 표 차이였습니다. 불과 1년 전 같은 의사당에서 314대 291로 통과되었던 사안이 정반대의 결론에 이른 것이니, 이 문제가 얼마나 깊은 균열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하겠습니다.

부결된 법안은 「말기 성인 환자 법안(Terminally Ill Adults bill)」이라 불렸습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거주하는 성인 가운데 의사로부터 기대여명 6개월 미만이라는 진단을 받은 사람이 치명적인 약물을 처방받아 스스로 투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의사가 직접 주사를 놓는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신청자는 증인이 서명한 두 장의 선언서를 통해 의사를 밝혀야 하고, 두 명의 독립적인 의사가 진단을 확인하며 환자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았고 강요당하지 않았음을 보증해야 했습니다. 여기에 판사와 사회복지사, 정신과 의사 세 사람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사례를 검토해 만장일치로 서명하는 절차까지 두었습니다. 의사와 약사, 요양시설은 참여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았습니다. 절차만 놓고 보면 상당히 촘촘한 설계였습니다.

그럼에도 부결된 이유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 측이 가장 집요하게 파고든 지점은 안전장치의 두께가 아니라, 그 장치가 지켜야 할 사람들의 처지였습니다. 시니어와 장애인, 빈곤층이 가족이나 사회에 짐이 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죽음을 선택하도록 떠밀릴 수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서류상의 절차가 아무리 정교해도, 병실에서 자녀의 지친 얼굴을 마주한 시니어 환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심사할 수는 없다는 지적입니다.

여기에 완화의료(palliative care)의 현실이 겹쳤습니다. 올해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보건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노동당 애슐리 달튼 의원은 토론에서, 필요한 모든 사람이 양질의 완화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누구에게도 진정한 선택권이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습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면서도 서둘러 만든 법이 통과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고 밝힌 대목에서, 찬반 양측 의원들이 그를 끌어안았다고 전해집니다. 당사자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이번 표결의 성격을 압축해 보여줍니다. 고통을 덜어줄 다른 길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을 선택지로 먼저 제도화하는 것이 과연 자기결정권의 확대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물론 찬성 측의 호소도 가볍지 않았습니다. 발의자 중 한 사람인 킴 리드비터 의원은 생을 마감하려 강가로 향하던 말기 암 환자가 전동휠체어의 배터리가 다해 그 자리에서 흐느끼다 발견된 사연을 전했습니다. 또 다른 발의자 로렌 에드워즈 의원은 표결 직후 현행법이 그대로 두기에는 너무 잔인하다며 이 사안이 반드시 다시 다뤄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여론조사에서는 영국인의 4분의 3가량이 원칙적 합법화에 찬성한다고 나타납니다. 그러나 원칙에 대한 찬성과 구체적 제도에 대한 동의는 다른 문제였던 셈입니다.

정치적 변수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던 키어 스타머 전 총리와 달리, 지난 7월 취임한 앤디 번햄 총리는 조력자살 표결에 앞서 완화의료와 돌봄 체계 강화가 먼저라는 입장을 밝히고 이번 표결에서는 기권했습니다. 앞선 법안이 상원에서 1,200건이 넘는 수정안 제출로 사실상 지연 저지되었던 전례도 남아 있습니다. 분석가들은 2029년으로 예상되는 다음 총선 전까지 전면적인 재추진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로써 영국은 조력자살을 어떤 형태로든 허용하는 나라들의 대열에서 당분간 비켜서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1997년 연방대법원이 판단을 각 주에 맡긴 뒤 오리건주를 시작으로 현재 13개 주와 워싱턴 D.C. 등 14개 관할 구역에서 허용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와 벨기에, 스페인, 네덜란드에도 관련 법률이 있고, 일부는 시한부 진단을 요건으로 두지 않습니다. 프랑스 의회도 최근 관련 법안을 승인했습니다. 1942년부터 조력자살이 합법인 스위스에는 매년 500명 이상이 이 제도를 이용하기 위해 국경을 넘습니다. 여든여섯 살의 방송인 출신 활동가 에스더 란첸은 법안 처리가 늦어지는 사이 스위스로 떠날 기력조차 잃었다며, 건강하고 여유 있는 사람만 선택할 수 있는 현실을 문제 삼았습니다.

우리 사회도 이 논의에서 멀리 있지 않습니다.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된 지 여러 해가 지났고, 조력존엄사를 둘러싼 입법 논의도 이미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영국의 이번 표결이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은 찬반의 승패가 아니라 순서에 있다고 봅니다. 통증을 제대로 다스려 주는 의료, 혼자 앓지 않게 하는 돌봄, 가족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부양 구조가 먼저 갖추어져야 합니다. 그 토대가 없는 상태에서 주어지는 선택권은 자유가 아니라 압력이 되기 쉽습니다. 시니어 세대가 마지막 순간에 붙들어야 할 것은 떠날 권리이기 이전에, 끝까지 존중받으며 머무를 권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