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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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적 노동을 상당 부분 대체하리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정작 다음 세대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론이 곳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짧은 문장으로 지시만 내리면 인공지능이 알아서 코드를 작성해 주는 이른바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 확산되면서 나온 주장입니다. 그러나 정작 초저가 컴퓨터 한 대로 전 세계 수천만 어린이에게 프로그래밍의 문을 열어준 당사자는 이러한 통념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영국의 신용카드 크기 컴퓨터 라즈베리 파이(Raspberry Pi)를 만든 에벤 업턴(Eben Upton, 48세) 창업자가 그 주인공입니다.

코딩은 여전히 유효한가

업턴은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코딩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현대적 형태의 문해력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는 컴퓨터에 단순히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는 좁은 의미의 코딩과, 문제를 계산 가능한 형태로 재구성하는 사고 방식으로서의 프로그래밍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사고를 익히지 못한 사람은 인공지능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이를 설계한 기업이나 정부에 무의식적으로 좌우될 위험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는 프로그램을 하지 않으면 프로그램을 당하게 된다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오랜 경구를 재차 인용했습니다.

업턴이 2008년 동료들과 함께 설립한 비영리 자선단체 라즈베리 파이 재단은 지난해 말까지 총 1억 1,200만 파운드(약 2,184억원)를 청소년 코딩 교육에 투입했습니다. 그 결과 230만 명의 학생이 코딩 클럽을 거쳤고, 25만 명 이상의 교사가 관련 훈련을 받았습니다. 최초 25파운드(약 4만9천원)에 불과했던 이 저가 컴퓨터가 촉발한 교육 운동은, 지난해 케임브리지 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지원자를 1,759명까지 끌어올려 합격률이 7%에 그치는 최고 인기 학과로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인공지능 버블에 대한 냉철한 시각

흥미로운 대목은 정작 첨단 기술 기업을 이끄는 업턴 자신이 실리콘밸리발 인공지능 낙관론에는 냉담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초지능 도래를 기정사실처럼 말하는 미국 빅테크 경영진들을 향해 다소 구세주적인 분위기를 풍긴다고 꼬집었습니다. 공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인공지능의 생산성 향상 곡선은 무한히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에서 정체되는 S자형 곡선, 이른바 시그모이드(sigmoid) 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그의 진단입니다. 인간의 지능이 인공지능이 결코 넘어서지 못할 점근선(asymptote)으로 남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업턴은 오히려 기술이 정치 권력과 다시 결합하는 현상을 더 큰 위협으로 지목했습니다. 통제 불능 인공지능이 인류를 멸종시킬 확률을 뜻하는 이른바 파멸 확률(p(doom)) 논쟁에 대해, 그는 그 실체는 폭주하는 기계가 아니라 아마도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 국가일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산업혁명 이래 영국이 세계에 남긴 유산은 상업과 정치 권력을 분리해 생활 수준을 끌어올린 데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입니다. 실제로 그는 초기 중국에 의존하던 생산 라인을 로봇 공학을 활용해 영국 웨일스 지역으로 되돌리는 리쇼어링(reshoring)에 성공하며, 대량 생산은 반드시 저임금 국가에 맡겨야 한다는 통념도 함께 깨뜨렸습니다.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

이러한 사례는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손자녀 세대의 교육 방향을 고민하는 시니어라면,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대신해 주리라는 막연한 기대보다 사고력과 문해력의 기초를 다지는 교육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원칙을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제조업 기반을 해외로 넘긴 뒤 좀처럼 되돌리지 못하는 우리 산업 현실에서, 로봇 공학을 통한 생산 기지의 국내 복귀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해 볼 대목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기술이 소수 권력에 집중될 때 사회 질서와 안전이 흔들릴 수 있다는 그의 경고는, 오랜 세월 격변을 지켜봐 온 시니어 세대의 경험적 지혜와도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화려한 장밋빛 전망과 근거 없는 공포 모두를 경계하며 냉철한 사실에 기반해 판단하려는 업턴의 태도는,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도 지켜야 할 기본과 원칙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거대한 기술 물결 앞에서 무비판적으로 편승하기보다, 검증된 원칙과 기초 역량을 굳건히 지키며 합리적 균형을 찾아가는 자세야말로 오늘의 시니어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지혜일 것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