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お邪魔します(おじゃまします, 오자마시마스; 실례합니다;[저는 악마입니다], )
일본인 집에 초대받아 방문한 적이 있나요?
아쉽게도 저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2018년 가을의 일본 출장은 3개월여간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긴급하게 일본에 있는 공장 네 곳을 꼼꼼하게 점검해야 하는 특별한 지시로 혼자 지내게 되었습니다.
비즈니스 호텔에서 지내라고 정해 주었지만, 그 비즈니스 호텔은 캐리어도 온전히 펼칠 수 없는 좁은 공간이라 세달을 지낸다는 것은 감옥과도 같을 것 같아, 지원센터에 요청해서 주재원이 지내는 숙소 중 남은 방이 있는지 확인 요청을 했습니다. 그 중 가족이 와서 지내던 한 본부장이 사시던 ‘멘숀’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계약기간이 6개월 남아 있으니 제가 거주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숙소는 일본인들의 거주지인 멘숀(Mansion; 일본식 아파트)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제공해주는 호텔이 아니다보니, 숙식 및 청소, 세탁까지 해야 하는 ‘자취생활’을 자청하게 된 셈입니다. 일본이 집에서 살면서, 일본인 마트에서 장을 보고, 일본의 식자재를 가지고 음식을 해 먹으면서 지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자발적인 일본에서 세 달 살아보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일본 현지 생활에 근접하려는 흉내를 내 보았지만, 제 정서가 한국 토종이다 보니 일본인의 속능 들여다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마침 회장님의 일본어 개인교습을 맡고 있던 일본어 선생님이 계셨고, 업무가 끝나면 작은 회의실에서 일본어 수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어는 오래전부터 접하고 있어 독해는 어느정도 할 수 있었지만, 한국어를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도 못하는 일본어 선생님과의 수업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시간도 여유가 있으니 이번 기회에 깊이 있게 공부하자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밥 먹었니?”라는 한국 인사말에는 여러 깊은 뜻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번에 배우는 일본어에서는 속 뜻을 추적해보자’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인사말부터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인사말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흥미를 끄는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바로 ‘초대받은 집에 들어가면서 하는 인사’입니다.
아마도 관행적으로 외우는 것이 외국어 초심자의 태도이기는 하지만, 특이한 의미를 가진 한자를 포함하고 있으면 확인을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본어 회화책에는 ‘오자마시마스(おじゃまします)’라고 되어 있고, 일본어 선생님은 무조건 관행적으로 쓰는 것이니 무조건 외워서 쓰라고 하십니다. 무슨 뜻이냐고 여쭈어도 선생님의 대답은 한결같이 “실례합니다” 수준을 넘지 않으셨고, 일본어 수준이 낮은 저의 질문은 그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특히 경어체로서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경우에는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인사말의 본질에 대해서 궁금해했지만, 쉽게 속의 의미를 알 수 없었습니다. 통역직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없었고,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도 포기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겠구나 하면서 인터넷을 뒤지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는 배움을 향한 하나의 작은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일본 소설에서 ‘오자마시마스(お邪魔します)’라는 문장이 나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오자마시마스(おじゃまします)’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니 틀림없었습니다. ‘히라가나’로만 쓰여졌던 문장에 ‘한자’가 자리를 잡고 있으니, 그 한자만 해석하면 ‘본 뜻’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쓰인 단어 ‘자마(邪魔, じゃま)’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사특(邪慝)하고 나쁜 마(魔). 몸과 마음을 괴롭혀 수행(修行)을 방해(妨害)하는 악마(惡魔)’라는 뜻이었습니다.
인사말 “오자마시마스(お邪魔します, おじゃまします)”를 한국어로 직역하면 “저는 악마입니다.”라는 뜻입니다.
“나는 악마입니다.”
“나는 악마입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것이 남의 집에 들어갈 때 해야 하는 일본인의 높임 인사말입니다. “실례합니다(失礼します, しつれいあいます)”라는 말보다 경어체로 쓰이면서 외국인에게는 관용구로 배우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때 한 일본거주 30년 된 한국인으로부터 인사말의 유래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이 인사말은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민정 시찰을 나갔을 때, 아주 큰 회당을 짓는 광경을 목격했답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대화가 이어집니다.
“이 회당은 누구가 짓느냐”
“교인들입니다.”
“아니 쇼군도 아닌 교인이 무슨 돈이 있어서 이렇게 큰 회당을 짓느냐?”
“교인들이 십시일반으로 헌금이라는 것을 낸 것이라고 합니다.”
“교인들은 무슨 댓가로 이렇게 헌금을 내는 것이냐? 세금이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교당을 짓기 위해서 헌금을 낸답니다”
“그 하나님이 어디에 거처하느냐? 한 번 만나봐야 겠다.”
“하나님은 하늘에 거쳐한다고 합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떻게 교인들에게 믿음을 주느냐?”
“성경이라는 말씀을 통해서 믿음을 전해 준다고 합니다.”
“교인들은 헌금을 내면 무엇을 얻느냐?”
“믿는 하나님이 죽으면 천국에 보내준다 합니다”
“교인들은 헌금을 얼마씩 내기에 이리 큰 교당을 짓느냐?”
“교인들은 자신이 번 돈의 십분의 일을 모아서 ‘십일조’라는 명목으로 낸답니다.”
“헌금을 안 내면 어떻게 되느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과 같이 어렵다는 것이 성경이라는 경전에 나와있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교인의 도리라 하면서 자진해서 낸답니다.”
그 말은 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식과 같은 부하를 잃어가고 목숨을 던져가면서 성(城)을 하나씩 점령했는데, 이 기독교는 보이지 않는 신(神)을 믿으면서 이렇게 성(城)만 한 회당(會堂)을 짓는 모습을 통해 ‘기독교의 위력’에 겁을 먹게 되었답니다. 그리고는 기독교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절(寺)은 셈하기를 가르치는 공부방 겸 등기소로 전락시켰습니다.
기독교를 탄압하면서 ‘오호담당제(五戶擔當制)’로 서로 기독교인이 있으면 신고하도록 관리했고, 여러 집의 사람들이 한 집에 모이면 의심했고, 신고하지 않으면 다섯 가구 전체가 죽임을 당하게 되니, 남의 집에 가서 십자가 형상을 보게 되면 바로 신고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외부인을 초대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웃집을 경계하는 풍습이 250년간 진행되었다”고 얘기를 마쳤습니다.
그러니 남의 집에 들어간다는 것이 그 집에는 ‘악마’로 보이기에 충분한 것이 되었습니다.”
에도시대 250년 동안 ‘기독교’를 탄압한 흔적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고, 선교사들에게 일본은 ‘선교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어려운 곳이라고들 하는데,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간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의 집을 방문할 때는 “악마입니다.”라고 들어가고 나올 때는 “악마였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관용구로 굳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인사말은 “진지 드셨어요?”라고 하는 한국의 관용적 인사말과 유사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아픈 과거는 있기 마련입니다. 일부터 아픈 부분을 들추어내려는 것이 아니지만, 지적 호기심이 발동되면 깊이 있기 탐색해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유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혹시나 일본인 집에 가실 일이 있으면 “오자마시마스(お邪魔します, おじゃまします)” =”저는 악마입니다”라는 인사말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아쉽게도 3개월동안 매일매일 일본인들과 일을 하며서 아주 가깝게 지냈지만, 일본인 집을 직접 방문해서 이 인사말을 써 본적은 없습니다. 일본인들의 속마음을 들쳐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는 악마(邪魔,じゃま)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