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28일
8-9-1800

– 縁(えん, 엔, 연)과 情(じょう, 죠, 정); A Wet Japanese Thing

일본 문화의 매혹적인 측면 중 하나는 남성과 여성이 전생(前生)부터 ‘소울메이트’로 인연 지어졌으며, 여러 생에 걸쳐 다시 만나게 된다는 강한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다른 문화권에서도 꽤 흔합니다.

일본인들은 ‘縁(えん, 엔, 연)’이라는 개념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는 우연히 자주 마주치게 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호감과, 그 만남이 행운을 가져다주는 인연을 뜻합니다.

이러한 행운의 우연을 경험한 사람들은 서로 간에 ‘엔’이 있다고 하며, 반대로 ‘엔’이 없는 경우에는 서로 마주칠 때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마찰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 ‘궁합이 맞지 않는’ 경우입니다.

일본인들은 대인관계에 매우 민감하고 ‘안테나’를 항상 세우고 있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엔’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핍니다. 특히 외국인과의 만남에서는 문화적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에 긍정적인 신호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적인 반응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밀접하게 연관된 개념이 ‘情(じょう, 죠, 정)’입니다. 완벽한 번역은 어렵지만, ‘따뜻한 공감(온정)’에 가깝습니다. 사람에 따라 ‘情(じょう, 죠, 정)’가 전혀 없는 경우도 있고, 보통은 조금씩 가지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아주 풍부하게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즉시 그 사람의 ‘情(じょう, 죠, 정)’ 수준을 가늠하고, 이를 바탕으로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킬지 여부를 결정합니다.

한국인의 情(정)과 일본인의 ‘情(じょう)’는 전혀 다릅니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 일본에서는 ‘죠’가 있는 사람을 ‘젖은(wet)’ 사람, 없는 사람을 ‘마른(dry)’ 사람으로 부르는 것이 유행했습니다. 영어 발음은 일본식으로 변형되어 wet는 ‘wetto(ウェット, 웻토)’, dry는 ‘dorai(도라이, ドライ)’가 되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일본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로맨틱한 태도 경험이 거의 없어 ‘dorai(도라이, ドライ)’로 불렸습니다. 일본에서 서구식 데이트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 이후였고, 1960년대에 들어서야 일반화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남성들이 여성에게 무심하고 대체로 무례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었던 반면, 일본에 온 서양 남성들은 일본 여성들의 취향을 세심히 배려하며, 외국 영화 속에서나 보던 로맨틱한 태도를 보여주었기에 일본 여성들에게 ‘웻토’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최근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간의 국제 결혼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도, 이것과 비슷한 경향이 작동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wetto(ウェット, 웻토)’나 ‘dorai(도라이, ドライ)’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지는 않았지만, ‘情(じょう, 죠, 정)’ 개념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일본 파트너의 ‘情(じょう, 죠, 정)’ 기대치에 부합하지 못한 외국 비즈니스맨들은 대체로 차갑고, 불성실하며, 거만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전통적으로 일본 문화에서 ‘縁(えん, 엔, 연)’과 ‘情(じょう, 죠, 정)’는 비즈니스 관계에서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과거에는 세부 계약서 없이 인간적 유대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기에, 관계를 즐겁게 만들고 유지하는 ‘엔’과 ‘죠’가 필수였습니다. 오늘날 일본과 외국 기업 간에도 계약서는 필수지만, ‘縁(えん, 엔, 연)’과 ‘情(じょう, 죠, 정)’는 여전히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두 가지가 모두 존재해야만 관계가 시작되며,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관계가 약화되고 결국 파탄에 이를 가능성이 큽니다.

일본 기업은 가격, 납기, 클레임 등 기업 간에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때도 ‘縁(えん, 엔, 연)’과 ‘情(じょう, 죠, 정)’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외국인들에게는 “비즈니스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다”고 느껴져 당황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회사가 B회사의 부품을 사용하고 있는데, 나 C회사의 직원이 B회사의 것보다 성능도 우수하고 가격도 낮은 부품을 들고 가서 B회사의 부품 대신, 우리 C회사의 부품을 구매해 달라고 했을 때, A회사의 직원은 B회사와의 ‘縁(えん, 엔, 연)’ 때문에 쉽사리 C회사의 부품으로 교체하지 못합니다.

우리네 정(情)을 일본의 情(じょう)이 어떻게 다른 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드리자면,
우리네 “정”은 가족, 친구, 이웃 등 오랜 관계를 맺으면서 자연스럽게 쌓이는 깊은 유대감과 온기, 배려, 끌림, 애정 등 다층적인 감정을 포함합니다. 논리나 조건 없이 마음으로 느끼고, 행동으로 표현되는 감정입니다.  따라서 오랜 시간 함께하며 생기는 친밀감이고, 때로는 이유 없는 배려, 말 없는 도움, 헤어진 후에도 남는 마음입니다. 친근함뿐 아니라, 이별·안타까움·슬픔까지 포함됩니다. ‘우리가 된다’처럼 집단 속 결속과 상호의존성 강조하는 것으로  인간관계의 감정적 기반이자, 한국 사회의 연결·우리 의식을 강화하는 정서적 문화입니다. 관련된 단어를 들어보면, 품앗이, 두레, 정 떨어지다, 정이 들다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情(じょう, なさけ)’은 한자 자체의 뜻은 감정, 동정, 인정 등입니다. 일본어 음독은 じょう(죠), 훈독은 なさけ(나사케)로, 주로 “동정심, 인정, 애정, 감정”으로 쓰입니다. 情(じょう, 죠)가 쓰이는 단어로는 ‘人情(にんじょう, 닌조): 인정, 타인에 대한 이해와 동정, ‘情熱(じょうねつ, 죠네츠)’: 열정, 情け(なさけ, 나사케): 동정심, 자비, 風情(ふぜい, 후제이): 정취, 운치 등으로 붙여서 쓰이는게 일반적입니다.
일본인의 ‘情((じょう, 죠)’는 주로 논리나 의무(기리, 義理)와 대비되는 감성적 측면을 의미합니다. 개별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을 가리키지만, 한국의 ‘정’처럼 집단적 유대·애착보다는 개인적 감정이나 상황에 더 초점을 둡니다.

일본 문화에는 앞서 칼럼에서 공유해 드린 ‘아마에(甘え)’라는 개념도 있는데, 이는 상대에게 기대고 의존하는 심리로, 능동적이기보다 수동적인 감정관계입니다.

차이점을 표로 정리하자면

한국의 정(情)  일본의 情(じょう)
감정 성격 깊은 유대, 집단 속의 끈끈함, 애착과 포용 개인적 감정, 동정, 인정, 감성
표현 방식 행동과 배려, 집단 정서 강조 동정, 자비, 개별 감정 중심
사회/문화 오랜 관계, 가족·이웃, “우리” 의식 개인적 관계, 상황적 동정, “나” 중심
근본 분위기 집단 결속·온기·상호의존성 개인 감정적, 때로 예의·쿨함

정리하자면 한국의 ‘情(정)’은 공동체와 결속, 따뜻한 유대와 포용이 강조되는 반면, 일본의 ‘情(じょう, 죠)’은 동정·인정 같은 개별적 감정이 중심이며, 사회적 맥락/표현도 다릅니다.

특히, 한국의 ‘情(정)’은 논리보다 마음, 행동의 감정이고, 일본의 ‘情(じょう, 죠)’은 타인에 대한 감정적 공감이나 동정의 느낌이 더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dorai(도라이, ドライ)’가 우리가 쓰는 ‘또라이’와 같은 뜻과 어원인지에 대해서 알려드립니다. 

우리네가 쓰는 단어 “또라이”는 ‘돌아이’의 발음이 변형된 말로, ‘돌’과 ‘아이’가 결합된 한국 고유어 표현입니다. 여기서 ‘돌-‘은 ‘수준이나 품질이 떨어지는’, ‘정상이 아닌’ 등의 의미를 가진 접두사이고, 이를 붙여 ‘돌+아이’ → ‘돌아이’ → ‘똘아이’ → ‘또라이’ 순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즉, 정신이 정상적이지 않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한국어 속어입니다.

일본어 ‘dorai(도라이, ドライ)’는 영어 “dry”가 그대로 외래어로 들어온 것으로, 원래 의미는 ‘건조하다’이지만, 성격을 묘사할 때 ‘냉정하다’, ‘쿨하다’ 식으로도 씁니다. 일본어 속어에서 “또라이(미친 사람)”라는 뜻으로 ‘dorai(도라이, ドライ)’를 사용하는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일본 현지에서 ‘미친 사람’, ‘정신이 이상한 사람’을 일컫는 비속어는 “イカレタ(이카레타)”나 “ヤバイ(야바이)” 등이 더 가깝고, ‘dorai(도라이, ドラ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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