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03일
8-10-1800

– 褌を締める(ふんどしをしめる, 훈도시오시메루; 훈도시를 졸라매다; roll up one’s sleeves)

산업화 이전 일본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옷을 입고, 음식을 먹고, 일을 하며, 일상생활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생생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는 후세에 세밀한 그림과 회화를 남긴 수많은 예술가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기 일본에 예술가가 많았던 이유는 상당 부분 당시의 문자 체계와 수공예 산업에 널리 퍼져 있던 도제 제도 때문이었습니다. 복잡한 획으로 이루어진 한자(漢字)를 배우는 과정에서, 모든 교육받은 일본인은 어느 정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목공, 도자기, 비단, 종이 제조 등 수십 가지 수공예 분야에서 인정받는 장인이 되려면, 유명한 장인 밑에서 수년간 현장 교육을 받아야 했고, 그 결과 인구의 상당수가 뛰어난 기계적 기술과 미적 감각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향에, 서예나 시와 같은 미적 활동이 결합되면서, 일본인 문화 전반에 예술적 충동이 스며들었습니다. 이는 시대상을 다채로운 색감으로 기록한 오랜 계보의 목판화가들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들 예술가 대부분은 일상적인 사람들의 생활상을 주로 그렸으며, 우리가 과거의 생활을 이해하는 데 있어 ‘판화(版画, はんが, 판가)’가 중요한 사료가 된 이유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초기 일본 생활상 중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은, 일본 전역을 가로지르는 주요 도로를 따라 일하던 짐꾼들, 목수와 노동자들입니다. 그들의 여름 복장은 종종 ‘훈도시(褌, , ふんどし)’라고 불리는 허리에 두르는 천 한 장뿐이었습니다. 훈도시는 다리 사이로 천을 통과시켜 사타구니에 꼭 맞게 당긴 뒤 허리에 묶는 형태였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훈도시를 졸라매다(褌を締める, ふんどしをしめる, 훈도시오시메루)”라는 표현은 일을 시작할 준비를 하거나, 더 나아가 어떤 일에 각별한 노력을 쏟을 준비를 한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이는 영어의 “roll up one’s sleeves(소매를 걷다)”에 해당하는 표현입니다.

오늘날 비즈니스 환경에서 이 표현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는 훈도시 자체가 이제 일부 전통 축제 참가자나 특별한 행사에서만 착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개념은 여전히 살아 있고 중요합니다.

일본의 대기업들은 직원들이 ‘소매를 걷게’ 만들기 위해 하나 이상의 정기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일본에 있는 동종업 공장을 인수해서 현지 실사를 위해 장기 출장을 간 적이 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출장기간 동안의 책상은 사무실은 전층이 칸막이와 벽이 없이 뻥 뚤린 곳이었습니다. 무표정하게 출근해서 고개를 들지도 않고 모니터를 응시하는 일본 직원들이 갑자기 일제히 일어나서 창가와 벽쪽으로 일제히 이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덩그라니 사무실 한 쪽에 앉아 있던 저도 움찔하면서 급히 일어나서 창가로 옮겨 섰습니다. ‘딩동댕’하는 스피커에서 무엇인가 약속된 신호가 울리고, 이른바 ‘라디오 체조’가 흘러나왔습니다. 모든 직원들이 스피커에 나오는 구령에 맞추어 체육시험을 보는 학생처럼 정확하게 동작을 취했습니다. 우리네 ‘국민체조’와 비슷해서 따라하는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저에게 아침에 체조가 있다는 사전 예고도 없었고, 모든 직원들이 일을 하기 전에 “훈도시를 졸라매다(褌を締める, ふんどしをしめる, 훈도시오시메루)”의 개념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본사에서 실사를 나간 임원이 혼자서 아침체조를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면? 그때 오싹하던 기분은 잊을 수 없습니다.

이후 본사에서 기이한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00인의 선언’을 회의 직전에 선창과 후창을 마치고 진행하라는 것이 회장님의 특별지시사항이었습니다. 임원 회의에서는 잘 지켜지는 듯 싶었으나, 부서 회의나  낮은 직급 직원간의 회의에서는 금새 유명 무실하게 적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훈도시를 졸라매다(褌を締める, ふんどしをしめる, 훈도시오시메루)”의 개념이 습관화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아침 체조, 격려 연설, 사가(社歌) 제창 등이 포함됩니다. 대형 공공홀에서의 대규모 집회나, 음식점·여관에서의 소규모 모임도 정기적으로 개최되어 공격적인 팀 정신을 고취합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외국 기업인들도 일본인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동일하거나 유사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훈도시를 졸라맨다”는 유머러스한 표현을 활용하는 것도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훈도시(褌を締める, ふんどし)는 매우 노출이 심한 속옷으로, 엉덩이나 중요 부위가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 현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되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공공 장소에서 훈도시 차림으로 돌아다닌다면 에티켓 문제나 부적절한 행동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1980~90년대 일본이 해외여행 자유화 시기 때 일부 일본인들이 훈도시 차림으로 호텔 로비를 돌아다녔다는 사례가 있는데, 이것이 외국인들에게 나라망신으로 여겨져 안 좋은 인식이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도 “해외에서 이런 행동을 하지 말자”는 캠페인이나 책자, 애니메이션까지 제작된 바 있습니다. 이는 일본 내에서도 훈도시 복장에 대한 세심한 사회적 인식과 규범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외국 매체나 역사적으로 일본인을 묘사할 때 훈도시 차림이 야만적이라는 편견이나 풍자의 대상으로 종종 사용되면서, 일본인들이 이에 대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일본 전통문화가 오해되거나 왜곡되어 나타나는 부작용입니다.

훈도시는 전통적이고 일상 속에서 점차 사라지는 남녀가 입는 속옷 복장으로, 현대의 공공장소나 일상 생활에서 착용하기에는 부적절한 의복입니다. 특히 여성이나 남성이 훈도시를 일상복으로 입는 것은 드물고, 일부 마츠리(祭り, 일본 전통 축제) 또는 예술적 표현 등에서만 제한적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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