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10일
9-9-1800

– 激勵會(励ます会・はげますかい, 하게마수 카이; 격려회; Encouragement Parties)

일본인은 우주의 음양(陰陽) 원리를 누구보다도 교묘하게 활용해 온 민족입니다. 자주 지적되듯이, 일본은 모순의 나라입니다.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지극히 공손하기도 하고, 때로는 짜증 날 정도로 무례하기도 합니다. 한없이 겸손하다가도 터무니없이 거만해지며, 지극히 정직하다가도 충격적으로 부정직해질 수 있습니다.

이는 수 세기 동안 권위주의적 정권 아래에서 억압받으며, 국민이 정치에 발언권을 갖지 못했고, 법으로 보장된 인권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일본 사회의 도덕성은 보편적·불변적 원칙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필요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상황적 도덕’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순은 특히 대기업과 정치인 사이의 관계에서 극명히 드러났는데, 물론 일본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가 시작되면서, 정부와 대기업은 상업적·재정적·사회적으로 긴밀하게 얽히게 되었습니다. 20세기 후반까지 일본 정부는 대기업의 사실상 ‘이사회 의장’ 역할을 했으며, 각 부처의 관료들이 기업의 이사만큼이나 기업 운영을 통제했습니다. 이러한 밀착 관계는 잇따른 정치 스캔들을 낳았고, 결국 1975년 「정치자금규제법」이 제정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법은 기업 경영자가 특정 정치인이나 공직 후보자의 선거 자금에 150만 엔(약 13,000,000 KRW) 이상 기부하지 못하도록 제한했습니다.

그러나 예상대로 법 시행 이후 정치 자금은 ‘테이블 밑’으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기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위장되었고, 유력 정치인들은 여전히 매년 수백만 달러(수십억 원)에 달하는 ‘헌금’을 받아왔습니다. 이는 대체로 정부 계약을 위한 뇌물 성격의 자금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법의 결과로 새로운 형태의 정치자금 모집 방식이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현역 정치인과 후보자들은 도쿄의 주요 호텔에서  ‘激勵會(励ます会・はげますかい, 하게마수 카이; 격려회)’라 불리는 모금 행사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직역하면 ‘격려회’ 혹은 ‘격려 파티’로, 민감한 사안이나 사건을 에둘러 표현하는 일본 특유의 완곡어법을 잘 보여주는 명칭입니다.

1975년 이후 일본의 모든 전국 선거는 수백 건의 ‘ 激勵會(励ます会・はげますかい, 하게마수 카이; 격려회)’를 동반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수주 동안, 도쿄의 고급 호텔 로비와 연회장은 국회의원, 보좌관, 후보자, 로비스트, 기업 임원들로 가득 찼습니다. 후보자들의 비서와 후원자들은 사전에 행사 티켓을 판매했으며, 부유층과 대기업 대표들은 표를 구매하고 거액을 기부하는 것이 사실상 ‘의무’로 여겨졌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 일본에 진출한 일부 해외 기업들 역시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이 ‘激勵會(励ます会・はげますかい, 하게마수 카이; 격려회)’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 경영자들은 이러한 자리가 자사와 일본 정치권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임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직접 ‘激勵會(励ます会・はげますかい, 하게마수 카이; 격려회)’에 초대된 적도, 참석한 적도 없지만, 뜻과 내용이 비슷한 ‘모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여러번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지연과 학연이 있는 정치인에게 조직에서 ‘보험’성격으로 다녀오라는 지시를 받고 현금이 두툼한 흰색 봉투에 이름 석자와 출신 학교, 현직을 적은 봉투를 신간서적과 교환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용은 일본의 ‘激勵會(励ます会・はげますかい, 하게마수 카이; 격려회)’와 거의 같았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에게 가르쳐 주려고 만든 것인지? 음흉한 것은 금새 배우는 한국인의 속마음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