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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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뜻밖의 번개 만남이 있었습니다. 사위와 아들, 그리고 저. 셋이서 막국수 한 그릇에 오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 막국수집은 아내가 버스를 타고 지나며 우연히 간판을 본 곳인데, 신기하게도 이름이 고향에서 장인어른과 제가 즐겨 찾던 가게와 같았습니다. 마침내 함께 들른 그 식당은 현대적으로 단장되어 있었고 분위기는 예전과 사뭇 달랐지만, 메뉴에 적힌 ‘치악산 막걸리’라는 한 줄에 마음이 동했습니다.

알고 보니 주인장은 원주 출신이었고, 부모님도 현지에서 막국수집을 운영하고 계시더군요. 순간,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긴 이제 내 단골이다.’ 그날 아내는 비빔막국수를, 저는 물막국수를 시켰습니다. 슴슴한 국물 맛이 오히려 평양냉면처럼 깊이 있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막국수 번개는 더없이 성공적이었습니다. 사실, 미뤄두었던 숙제가 하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참석자 모두가 모여 다행이었습니다.

며칠 전, 필통을 정리하다 오래된 펜 세 자루를 발견했습니다. 만년필 두 자루와 볼펜 하나. 26년 전, 제가 최연소 부장으로 승진했을 때 동료와 부하직원들이 선물해 준 물건들입니다. 그 시절의 영광과 함께한 펜들입니다. 중고로 팔면 100만 원은 거뜬히 넘는 가치가 있지만, 제게는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감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결재할 일도, 펜을 꽂을 슈트 입을 일도 없습니다. 그냥 보관하기엔 아깝고, 그래서 아들과 사위에게 물려주기로 했습니다.

아들은 실용적인 볼펜을, 사위는 만년필 두 자루를 선택했습니다. 받아줘서 고마웠습니다. 특히 아들은 그 펜들이 제게 얼마나 특별한지를 알기에, 어쩌면 더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요즘 이렇게 생각합니다.

“쓸모 있을 때 물려주는 것이 진짜 물려주는 것이다.”

아내와도 오래전부터 그렇게 뜻을 모았습니다. 두 사람의 퇴직금과 모아 온 저축을 두 아이의 분가를 위해 기꺼이 사용했습니다. 남겨서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기꺼이 나눌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짜 ‘유산’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시니어 비즈니스 컨설팅에 입문한 지 10년이 되었을 때 축적된 배움이 있었습니다. 그간 배운 것은 심오한 학문적 깊이를 탐구하거나 토론회에서 거대 담론에 참여해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배움은 ‘몸소 실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다음 실천 과제는 책을 나누는 일입니다. 제가 가장 아끼는 분신들입니다. 신혼 때부터 안방에 옷장을 두지 않고 책장을 두도록 허락한 아내에게 감사한 일입니다. 이사를 세 번 했지만 매번 제일 큰 방의 한쪽 벽면을 책장으로 채웠고, 늘 저와 함께했습니다.

책장은 빽빽이 꽂혀 있고, 어떤 책은 이중으로 쌓여 있으며, 일부는 바닥에 세워져 있습니다. 제 목표는 작은 책장 하나만 남기고 나누는 것입니다. 그중에는 수십 년 전에 읽고 다시 펼쳐보지 않은 책들도 많습니다. 쓸데없는 고집으로 남겨둔, 이제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세로쓰기로 된 책들도 있습니다. 아쉽지만, 또다시 ‘몸소 실천하라’는 배움을 되새기는 계기가 됩니다.

쓸모 있을 때, 물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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