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5월 2일, 시니어파트너즈에 재직 당시 시니어 리더분들과 함께
북한이탈주민이 방송에 나와서 대한민국에 발을 딛는 순간 시민들이 버스 노선별로, 차례로 줄은 선 모습에 놀라며 ‘문명인의 행동’이라며 감동적이었다고 경험을 얘기합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몸을 가누지 못하는 지옥철에서도 내리고 타기와 줄을 사수하려고 몸부림치는 우리는 대단히 도덕적인 사회 생활인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새치기는 반문명적이고 절대로 허용되면 안 되느냐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새치기가 어쩌면 노약자나 눈치 빠른 사람에게 부여된 특권 같기는 합니다. 그런데 눈앞에 버젓이 펼쳐지는 새치기를 볼 때면 순간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관대하지 못한 저를 발견합니다.
새치기는 용납되어도 무방한 것일까요? 이참에 새치기를 경로우대권 소유자에게 허용하자고 공론화할까요? 얼마 전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디즈니월드 리조트에서는 놀이기구에 줄 설 필요 없는 60만 원대 ‘번개 패스’를 출시했다고 합니다. 새치기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요?
도덕적인 관점을 넘어서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요? 새치기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서 잘못된 행위라고 정의합니다. 새치기하면 순서의 혜택을 받은 사람은 한 명이지만, 그 외 뒤에서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야구 경기장 외야석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입니다. 맨 앞자리에 앉은 관람객이 흥분되어 일어나면 줄줄이 맨 뒤에 있는 관람객까지 어쩔 수 없이 일어서야 구경할 수 있습니다. 전국 노래자랑 공개방송에서 맨 앞자리에서 좋아하는 가수를 보고는 벌떡 일어섰을 때 수많은 뒤의 관람객은 동시적으로 다 같이 일어서야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출근길이었습니다. 마지막 합류 지점을 지나야 할 때였습니다. 우측 간선으로 끼어드는 본선의 차량과 이미 간선으로 빠져나갈 준비가 된 차량이 한 대씩 한 대씩 규칙적으로 겹치는 곳입니다. 드디어 앞 차가 본선에서 들어오는 차를 양보하는 순서가 되었습니다. 본선의 차 한 대를 앞차는 양보했습니다. 다음은 앞차가 전진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앞차는 전진하지 않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고 본선에서 진입하는 차를 한 대 두 대 세 대…. 한없이 우측 차선으로 합류를 시켜주는 것입니다. 처음 다섯 대까지 합류시켜 줄 때는 앞차 운전자가 참 관대한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2~3분 정도가 흘렀을까요? 제 뒤를 바싹 따르는 커다란 트럭의 경적이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저도 정신이 바짝 들면서 앞차 운전자가 왜곡된 관대함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당연히 그날 저는 평소보다 늦게 출근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제 뒤를 따르던 여러분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운전 습관을 얘기하면서 스스로 모든 새치기를 용납하는 관대한 성품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분을 종종 봅니다. 관대한 성품은 줄 맨 뒤 혼자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새치기를 허용한 그 개인은 배려심 깊은 관대한 행동을 했다고 으쓱할지 모르나 뒤에 선 모두를 비합리 속으로 몰아세우는 것입니다. 나 혼자 양보한다고 세상이 관대해지고 배려 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뒤를 돌아보고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양해를 구한 뒤 에야 관대해지는 것입니다. 줄서기에서 관대해지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새치기를 무조건 관대하게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