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和解(わかい, 와카이; 화해; Making Honorable Concessions)
일본에서의 사법 판결은 서면으로 된 법률에 기초하기보다는 사회의 전통적 관습에 크게 의존해 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일본 판사들은 공공의 이해를 위해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기보다는 융통성 있게 해석하며 판결을 내렸습니다. 봉건 시대에 마을 치안관들이 판사이자 배심원 역할을 겸했을 때, 막부 법률은 가혹하고 용서 없는 경우가 많아 — 판결 후 몇 시간 안에 사형이 집행되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대에도 솔로몬과 같은 지혜로 분쟁을 해결하고 공정하게 형벌을 내린 치안관들이 영웅으로 추앙받았습니다.
일본 법 집행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분쟁의 당사자들이 재판으로 가기 전에 서로 양보하고 합의를 이루는 과정으로, 이를 ‘和解(わかい, 와카이; 화해 또는 조화로운 해소)라고 부릅니다.
봉건 일본에서 와카이가 인기를 얻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우선, 분쟁의 당사자 모두를 유죄로 취급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물론 어느 한쪽이 더 잘못한 경우가 많았지만, “싸움은 둘이 있어야 일어난다”는 단순한 논리로 양쪽 모두 처벌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은 사람들로 하여금 당국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다툼을 피하도록 강력히 유도했습니다.
또한, 전근대 일본에서는 죄책이 집단적 성격을 띠기도 했습니다. 범죄자나 용의자의 가족, 때로는 지역사회 전체가 똑같이 유죄로 간주되어 처벌을 받았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도쿠가와 막부 초기의 소고(惣五) 사건입니다. 한 농부 소고가 가혹한 지방 영주의 세금에 항의하여 막부 쇼군에게 직접 청원서를 전달했고, 결국 쇼군은 해당 영지의 세금 인하를 명했습니다. 그러나 모욕을 당한 지방 영주는 보복으로 소고와 그의 아내, 두 아들을 참수했습니다.
일본인들이 법정을 기피한 또 다른 이유는, 고소당한 자가 보복을 가하는 깊이 뿌리박힌 관습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일본의 법적 처벌은 더 이상 집단적이지 않으며, 원고를 부분적으로라도 유죄로 간주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복수의 요소는 여전히 존재하며, 소송에서 승리한 원고조차 패소자 못지않게 고통을 겪습니다. 일본 사회에서는 소송 제기 자체가 “비일본적”이고, 비도덕적이며, 무책임하다고 여겨져 원고의 평판은 크게 손상되기 때문입니다. 즉, “소송까지 가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이 남아 있습니다.
현대에도 일본 법원은 분쟁 당사자들이 스스로 해결을 시도했다는 충분한 증거를 제시해야만 사건을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분쟁은 당사자 간 직접 합의나 제3자 중재를 통해 해결됩니다. 일본에는 일본조정협회라는 전문 중재인 단체가 있으며, 《중재 안내서》라는 책자도 발간하고 있습니다.
봉건 시대에서 유래된 또 다른 관습은 지역 폭력 조직 보스를 중재인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특히 건설업, 운송업, 정치 분야의 분쟁에서 조직폭력배의 영향력이 여전히 크기 때문에 이러한 관행이 자주 나타납니다.
외국 개인이나 기업이 일본에서 법적 문제에 휘말릴 경우, 단순히 임대차 분쟁이든 사망 사고나 형사 사건 같은 중대한 사안이든 간에, 중재인이나 조정자를 활용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미국인과 서구인들은 일반적으로 법 조항 그 자체를 우선시합니다. 반면, 일본인들은 법을 최후의 수단으로 여기며, 법률을 “권장 지침” 정도로 받아들이는 문화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본 문화에서 ‘和解(わかい; 와카이, 화해; Making Honorable Concessions)는 조화를 중시하고 갈등의 표면화를 피하며, 사회적 평화를 유지하는 전통적 가치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화해 문화에는 다음과 같은 폐해 또는 문제점이 존재합니다.
일본 사회는 분쟁을 공론화하기보단 갈등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넘기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 때문에 불만이나 갈등의 실질적 원인이 해결되지 않고, 표면적인 화해만 이루어집니다.
문제의 본질적 해결 대신 타협이나 쉬운 봉합에 의존함으로써, 근본적 변화나 개혁이 지연됩니다. 또 명확한 불평, 비판, 이견 표명이 사회적으로 꺼려지기 때문에, 개인은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참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립을 피하기 위한 과도한 자기 억제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이지메(집단 따돌림), 심리적 고립 등 일본 특유의 사회문제를 심화시킵니다. 조화(和, 와)만을 중시하다 보면 개인의 책임 의식이 약화되고, 잘못이나 실패 시에도 애매하게 넘어가는 문화가 고착화됩니다.
잘못된 관습, 불합리한 규칙이나 권위에 대해 쉽게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억제됩니다. 이를 통해 조직 내 부조리, 낡은 관행 등이 쉽게 유지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불만이나 사회적 문제(예: 차별, 부당함, 구조적 부조리 등)가 드러나기 어렵고, ‘대충’ 봉합되어 외부에서 실상을 파악하기 힘듭니다. 사회 문제를 ‘와’를 이유로 축소·은폐하려는 경향이 있어, 진짜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파악하거나 논의하는 것도 어렵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처럼 일본의 ‘화해’ 문화는 집단의 조화라는 장점도 있지만, 갈등과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지연하거나 더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