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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도 아니었던 훈련소 때 편지를 처음 쓰고 마지막 편지는 특기학교에서 쓴 게 마지막인 것 같구나. 여기 최전방의 날씨는 3월초에도 혹한의 추위가 계속되지만 그곳 서울은 이 편지지의 배경처럼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겠지? 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 XX로를 걸어 들어오는 신입생들의 생동감이 좋았어. 신입생 특유의 어설프지만 열심히 꾸민 듯 한 모습을 보는 것도 젊음의 생동감을 보는 듯해서 정말 좋았지. 그래서 신학기 특히 봄 학기가 시작되면 그들의 에너지를 탐하기 위해 더 많이 XX로를 걸었는지도 모르겠어. XXX는 이제 학생회장은 아닐테고 혹시 신입생 환영회나 개강파티는 참여했어? 난 이 고립된 곳에서 새해를 맞고 3월을 맞고 봄을 맞는구나. 어떻게 해도 봄은 오는 것 같아. 납세 의무자의 봄. 서른 다섯 노처녀의 봄. 비정규직 노동자의 봄. 그리고 이등병의 봄 같이 나에게도 봄은 돌아왔지. 이곳은 무엇을 해도 부질없는 공간이라고 느껴. 겨울에는 수도 없이 제설을 했어. 그 당시에는 매일 창문을 두들겨대는 눈발로부터 나와 사회와의, 나와 다른 사람과의 시간이 위독해짐을 느꼈지. 근데 누가 그러더라고 이렇게 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 같다는 걸 예감하는 것이 곧 낭만이라고 말이야. 내 우울한 봄이 왔어. 지금의 나는 오래 비워둔 방이 시간에 찢겨질 듯 한 고독을 자아내고 있을 때 방안에 혼자 울리는 전화 수신음 같은 것이지. 내 마음의 병은 너무 깊고 나는 매일매일 한나절이 넘게 가슴을 앓고 있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해. 왜냐하면 내 고통에는 자막이 없거든. 그래서 읽히지 않나봐. 차라리 팔다리가 부러졌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내 고통에도 자막이 생겨 그들이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텐데. 매일 다른바 없이 국기는 게양되고 애국가는 흘러나와. 누군가는 벌서 210일을 했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이제 겨우 1/3을 했다고 하는데 전혀 감흥이 없구나. 이건 내일 당장 전역이라는 말을 들어도 그럴 것 같아. 나는 수심 보다 깊은 우울증에 걸렸어.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아니고 물론 그 중에서 가장 슬픈 것은 내가 비정상이라는 것을 실감할 때야. 그 상황은 내겐 너무 슬프고 자존심상 허락할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러워. 이런 이유 때문에 마음의 병이 더 깊어지나봐. 호흡곤란도 자주 오는데 아무도 믿어주질 않아. 정상이라고만 해… 나는 시인이 될 수 있을까? 김경주 시인은 굴욕을 연민하는 사람은 (=시인은) 제 자신의 삶이 삶에 대한 한 권의 조서여야 하고 그의 조서(=시집)은 자아의 병동이어야 한다고 하더라. 난 이미 이 곳에서 아주 거대한 백악 병동을 세웠지. 하지만 굴욕과 자기연민으로 점철된 시만 쓰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야. 심리학에서는 자신의 슬픔, 괴로움 등을 글로 써보면, 그 써보는 자체만으로도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하더라. 매일 써보고 떠 써보는 중에 이런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답장을 받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래서 XXX 항상 네게 감사하게 생각해. 이렇게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는 것이 내겐 상당한 힘이 될테니까. 또한, 나는 너와의 편지, 즉 글을 쓰는 행동이 내 마음을 병중에서 일으켜 줄 것이라 믿어! 새나래 편지의 마지막으론 니체로 마무리 할게 “인간은 B와 D 사이의 존재다.”라고 하던데 XXX는 그 ‘C’를 어떤 의미로 생각할까 궁금해졌어. 난 불특정한 ‘어떤’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어떤 존재 말이야. 니체는 C가 Choice(선택)이라고 하더라. 새나래 내가 입대하기 전 넌 14년 1학기, 2학기에 휴학을 할 생각이라고 했지? 휴학을 하고 무엇을 선택하고 그것을 하고 있을 네가 생각나. XXX 너의 삶도 니체의 말처럼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선택의 연속이겠지? 네 삶에 후회없는 ‘C’만 가득하길 기원할게.
3/17일 XXX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