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영국 청년층의 내 집 마련 여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은행들이 자기자본(디포짓)이 적은 젊은 대출자에게도 대출 자체는 내주고 있지만, 높은 금리로 인해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 상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진 탓에 실제 주택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과거 시행되었던 정부 지원 제도를 새로운 형태로 되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런던의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의 주말판 렉스(Lex) 섹션이 9월 19일과 20일 자에서 소개한 정부 위탁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시행된 생애 첫 주택 구매자 대상 지분 대출 제도 ‘헬프 투 바이(Help to Buy)’는 비용 대비 매우 높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이 제도는 정부가 주택 가격의 일부를 지분 형태로 대출해줌으로써 청년층의 초기 자금 부담을 낮추어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으며, 연구진은 시행 기간 동안 38만 7,000가구가 새 집에 입주할 수 있었고 이 가운데 절반은 이 제도가 없었다면 자력으로 주택을 마련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하였습니다. 아울러 신축 주택 건설 물량도 함께 늘어나는 효과가 확인되었으며, 정책의 부수적 결과로 주택 개발사들의 이익률 상승도 뒤따랐습니다.
문제는 지금 영국 건설업계가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런던 증시 FTSE 100 지수에 속한 대형 건설사 6곳 가운데 올해 가장 좋은 실적을 낸 퍼시몬(Persimmon)조차 연초 이후 시가총액의 15퍼센트가 증발하였습니다. 정부가 도시계획법 개정과 주택 공급 확대를 약속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구매할 여력이 되는 소비자를 충분히 찾지 못해 다수의 개발사들이 신규 착공을 미루고 현금을 쥔 채 관망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출 문턱 자체는 낮아졌으나, 고금리로 인한 상환 부담이 여전히 실수요를 가로막는 구조적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에 따라 다음 달 발표될 예산안에 새로운 형태의 헬프 투 바이를 담는 방안이 건설업계와 정부 모두에게 손쉬운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다만 재원 마련이 걸림돌입니다. 국채 금리 상승으로 영국 정부의 재정 여력이 이미 압박을 받고 있는 가운데, 과거 제도는 주택 소유자의 상환금을 감안하고도 총 290억 파운드(약 52조 6,200억 원)의 비용이 들었고, 정책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는 정부가 매년 40억 파운드(약 7조 2,600억 원) 이상을 청년층 주택 구매 지원에 쏟아부었습니다. 이 때문에 영국 주택건설협회(Home Builders Federation)는 지분 대출 비율을 기존보다 낮은 15퍼센트 수준으로 설계하고, 건설업체들이 제도 참여 대가로 수수료를 선납함으로써 정부의 재정 부담을 낮추는 절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고금리 국면에서 청년 세대의 내 집 마련이 벽에 부딪힌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디딤돌대출이나 특례보금자리론 같은 정책 금융 상품을 통해 실수요자의 초기 자금 부담을 낮추어 왔습니다만, 재원의 지속가능성과 형평성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주택 사다리는 단순히 한 세대의 자산 형성 수단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의 시니어 세대가 젊은 시절 내 집 마련을 통해 가정을 꾸리고 노후를 준비할 수 있었던 것처럼, 다음 세대에게도 같은 기회의 문이 열려 있어야 사회 전체의 안정과 세대 간 신뢰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는 시니어 세대를 부양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오랜 경험을 통해 자산 형성과 가정의 가치를 체득한 사회적 자산으로 재인식하는 일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재정 건전성을 도외시한 채 무분별하게 지원 규모를 늘리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접근 가능한 주택 사다리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난 7월 노동당을 이끌고 총리에 취임한 앤디 번햄(Andy Burnham) 총리 역시 생활비 부담 완화와 주택 공급 확대를 국정 우선순위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재정 건전성이라는 합리적 기준과 청년층의 주거 안정이라는 전통적 가치를 함께 지켜낼 수 있는 절충안이 다음 달 예산안에 담길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