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8일
10-17-0800_화해는 책임에서 시작됩니다-1024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 매거진은 10월 9일 자 지면에서 교육 현장의 갈등을 수습하겠다며 출범한 시민 단체 소식을 전했습니다. 다농(Danone)의 최고경영자를 지낸 에마뉘엘 파베르(Emmanuel Faber)가 마르탱 이르슈 등과 함께 ‘화해 제작소(La Fabrique de nos réconciliations)’를 설립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단체는 뜻을 같이하는 시민 250명으로 꾸려졌으며, 앞으로 18개월 동안 프랑스 전역을 돌며 사회적 유대를 회복하고 폭넓은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에 나설 계획이라고 합니다.

출범 배경에는 최근 프랑스 고등학교에서 이어진 봉쇄 시위와 학내 혼란이 있습니다. 일부 학생이 학교 바리케이드에 불을 지르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분노가 사회 전체의 대립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습니다. 파베르 측은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 국면이 쟁점을 달구는 데는 유리해도 시민이 깊이 숙의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선거 일정을 넘어서는 긴 호흡의 공론장을 열기로 했습니다.

이 단체가 내놓은 구상의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학령인구 감소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읽는 시각입니다. 프랑스는 2035년까지 학생 수가 약 170만 명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데, 파베르는 이를 학생 1인당 투입 자원을 늘려 교육 불평등에 맞설 전례 없는 기회라고 설명했습니다.

둘째는 현장의 자율성입니다. 지역 교육 주체에게 자율을 주되 엄격한 계약을 전제로 하며, 이 조건은 사립학교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여기에는 사회적 혼합(mixité sociale)을 보장할 의무가 포함됩니다.

셋째는 보충성 원칙(principe de subsidiarité)입니다. 문제 해결의 권한과 책임을 가장 가까운 단위에 맡기자는 이 원칙에 따라 자율은 책임과 함께 주어져야 하고, 그 책임의 내용은 형평성과 포용이라는 것이 파베르의 주장입니다.

공론 방식도 눈길을 끕니다. 화해 제작소는 노동자 독서회와 민중 교육 현장에서 쓰이던 집단 독서·토론 기법인 아르팡타주(méthode de l’arpentage)를 활용해 전국에서 모임을 열 계획입니다. 화상 회의 같은 기술적 수단으로 논의의 범위를 넓히겠다는 구상도 함께 내놓았습니다.

기사에서 언급된 보를루 보고서(rapport Borloo)도 짚어 둘 만합니다.

이 보고서는 2018년 4월 교외 지역 문제를 다루며 제출되었고, 장루이 보를루 전 생태부 장관이 작성했습니다. 일부 고등학교의 지나치게 큰 규모와 시설 환경을 문제의 요인으로 지목했지만, 제출 이후 정책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진단은 오래전에 나왔는데 처방이 뒤따르지 못한 셈입니다.

이 소식을 읽으며 저는 우리 사회를 먼저 떠올렸습니다.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7명대에 머물러 있어 학령인구 감소 속도가 프랑스보다 훨씬 가파릅니다. 학교 통폐합과 교원 수급, 지역 간 교육 격차 문제가 이미 현실이 되었습니다. 프랑스가 학령인구 감소를 자원 확충의 기회로 삼자고 하는 것처럼, 우리도 학생 수가 줄어드는 만큼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재원을 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다만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줄어드는 학생 수에 맞춰 예산이 자동으로 줄어드는 관성을 끊는 일은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보수적 시각에서 저는 이번 구상의 가장 큰 미덕이 자율과 책임을 한 묶음으로 본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율은 통제를 푸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평가가 따라야 지속됩니다. 국가가 모든 것을 틀어쥐는 방식도, 현장에 모든 것을 떠넘기는 방식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공동체에 가까운 단위가 먼저 감당하고 국가는 그 한계를 보완한다는 보충성 원칙은 가정과 지역, 학교라는 중간 공동체의 역할을 존중해 온 전통적 가치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렇다고 낙관만 할 수는 없습니다. 시민 250명이 18개월 동안 벌이는 대화가 곧바로 제도 개혁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사립학교에도 같은 계약 조건을 요구하는 대목은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을 부를 수 있습니다. 숙의의 결과가 선거 이후의 정책에 실제로 반영될 때 비로소 이 시도의 가치가 확인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니어 독자 여러분께 이 사례가 던지는 질문을 함께 생각해 보자고 청합니다. 교육 문제는 젊은 세대만의 몫이 아닙니다. 학교는 우리가 일군 공동체의 미래이며, 시니어 세대는 오랜 삶의 경험으로 갈등을 조율하고 책임을 감당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손자와 손녀가 다닐 학교, 이웃 아이들이 자랄 마을의 분위기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일이 곧 화해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화해는 선언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서로의 입장을 끝까지 듣는 인내와 자기 몫의 책임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쌓일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프랑스의 이번 실험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분노가 바리케이드로 번지기 전에 대화의 자리를 먼저 마련하겠다는 발상만큼은 우리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