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술(Printing)의 유럽보다 늦은 도입은 아랍인의 3,000년 역사에서 정보 기술 발전의 맥락에서 볼 때 아랍 세계의 과학 및 지적 발전의 발목을 잡고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계기를 제공한 중대한 사건으로 논의됩니다.
1. 인쇄술 도입 지연과 그 원인 (기술적 장애와 문화적 저항)
아랍 세계는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가 활판 인쇄술을 발명한 유럽에 비해 수백 년 동안 인쇄 기술 도입이 지연되었습니다.
- 기술적 장애물 (필기체의 저주): 아랍어 서체는 연속적으로 이어 쓰는 흘림체(cursive script) 형태이며, 이는 가동 활자(movable type)와 잘 맞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아랍어 활자 조판을 위한 완전한 폰트는 900개 이상의 다양한 문자를 포함해야 했으며, 이는 유럽 언어 활자 케이스의 약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던 라틴 문자 활자보다 훨씬 복잡했습니다.
- 비결정성 (Undemocratic): 아랍어 문자는 모음(vowel)을 보통 표시하지 않아 읽는 사람이 텍스트의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해독할 수 있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인쇄된 텍스트가 모음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아, 인쇄가 아랍어 텍스트 읽기를 더 어렵게 만들고, 글을 읽는 과정을 더 ‘비민주적’으로 만들었습니다.
- 문화적/정치적 저항: 인쇄술 도입에 대한 저항은 기술적인 문제 외에도 문화적, 정치적 요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종교적 반대: 1485년 오스만 제국은 종교 학자들의 압력으로 아랍어 인쇄를 금지했으며, 이후에도 이 금지령은 반복적으로 재확인되었습니다.
- 서기관들의 반대: 수많은 필사본 제작에 의존하던 서기관들은 일자리를 잃을 것을 우려하여 인쇄에 반대했습니다.
2. 과학 및 지적 발전 저해 (정보의 정체)
인쇄술의 늦은 도입은 아랍 세계의 지적 및 과학 발전에 심각한 제동을 걸었습니다.
- 지식 확산의 정체: 유럽이 활판 인쇄술을 통해 정보의 대량 생산 및 보급 시대를 열었을 때, 아랍 세계는 인쇄의 부재로 인해 350년 이상 인쇄물로부터 차단되었습니다.
- 진보의 제동: 인쇄술의 도입 지연은 과학적, 기술적 진보에 강력한 제동 장치로 작용했습니다.
- 지적 방법론의 차이 심화: 유럽에서 인쇄 혁명이 경험적 사실(empirical fact)을 증거로 삼는 과학 혁명의 기초를 다졌다면, 아랍 세계는 이 단계를 놓쳤습니다. 아랍 지식은 권위 있는 텍스트와 수사학(rhetoric)에 의존하는 언어적 진리(rhetorical truth)의 경로를 따르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 아랍 학자들은 9세기 알-킨디(al-Kindi) 시대 이후 합리적인 과학(al-’ulum al-’aqliyyah)보다는 전통적인 텍스트 과학(al-’ulum al-naqliyyah)에 집중하게 되었으며, 인쇄술의 지연은 이러한 흐름을 고착화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3. 언어적 민족주의의 재탄생 (정보 기술의 역설)
인쇄술 도입의 지연이 가져온 부정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랍어 인쇄가 시작되면서 언어적 민족주의(linguistic nationalism)와 지적 각성(al-Nahdah)이 촉진되었습니다.
- 인쇄술 도입의 계기: 아랍 세계에서 인쇄술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하여 선전 포스터를 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후 무함마드 알리 파샤(Muhammad Ali Pasha)가 1822년 정부 운영 인쇄소를 설립하며 인쇄술이 확산되었습니다.
- 알-나흐다(각성)의 촉진: 19세기 들어 아랍어 인쇄기가 느리게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아랍 르네상스(al-Nahdah)가 시작되었습니다. 언어적 민족주의를 주도한 지식인들은 인쇄된 텍스트를 통해 공통 언어, 문화, 역사를 기반으로 아랍인들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상을 확산시킬 수 있었습니다.
- 기술의 역전승: 수백 년간 지체되었던 인쇄 기술의 문제는 20세기 말 워드 프로세싱(word-processing) 기술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해소되었고, 이로써 아랍어 서체의 유려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효율적인 인쇄와 타이핑이 가능해졌습니다.
결론적으로, 인쇄술 도입의 지연은 아랍 세계가 경험적 과학 혁명 시대를 놓치고 정체된 지적 환경에 머물게 만든 주된 기술적 ‘비극’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쇄술은 결국 아랍어의 문화적 통일성을 재확인하고, 근대에 언어적 민족주의를 통해 아랍 정체성을 다시 결집시키는 정보 혁명의 도구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