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대 연결을 통한 새로운 인력양성의 실험
의료 현장의 인력난은 더 이상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병원과 요양시설은 숙련된 간호 인력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의료 서비스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이를 감당할 사람은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 테네시주에서 시작된 흥미로운 변화는 이런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병원이 고등학생을 직접 교육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인력난을 넘는 새로운 해법
테네시주의 ‘Ballad Health’는 약 7천만 달러(약 980억 원)에 달하는 인건비 부담을 안고 있었습니다. 간호사와 의료기술자를 구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였지만, 여전히 병동은 인력 부족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결과 병원은 결심했습니다. “직원을 기다리는 대신, 우리가 직접 키우자.”
이 병원은 지역 고등학교와 손잡고 학생들에게 병원 실습과 이론 교육을 동시에 제공하는 ‘Ballad Health Academy’를 설립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졸업 후 면허 실무 간호사(LPN) 자격을 취득할 수 있으며, 병원은 이들을 즉시 채용합니다.
이는 단순히 “학생을 돕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병원은 인력난을 해소하고, 학생들은 학자금 대출 없이 안정된 일자리를 얻습니다. 병원과 학교, 학생이 모두 윈윈(win-win)하는 구조입니다.
10대들의 교실은 이제 병원
이제 미국의 여러 주에서 이런 변화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 재단은 10개 주에 걸쳐 25억 달러(약 3조 5천억 원)를 투자해 **‘헬스케어 특화 고등학교’**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병원은 실습장, 학교는 이론 교육을 담당합니다.
테네시주의 한 교실을 보면, 침대에 마네킹 환자가 누워 있고, 학생들은 청색 유니폼을 입은 채 혈압을 재고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또 다른 주의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MRI 기기의 작동 원리를 배우고, 물리치료의 기초를 직접 체험합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병원이 무섭다”고 말하던 학생들이 이제는 초음파 기사나 간호사를 꿈꿉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병원에 들어와 직접 환자 모형을 만져보니, 진짜 직업이구나 느꼈어요.”
병원이 교사가 되고, 사회가 학생을 키운다
이 흐름은 단순히 인력 공급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세대 간 역할의 재정의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청소년이 성인이 되어야 비로소 ‘일’의 세계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는 훨씬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실제 현장 경험은 오히려 더 귀해졌습니다.
병원이 교사가 되고, 학생이 견습생으로 변모하는 이 모델은 ‘사회 전체가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상징합니다. 10대는 더 이상 미래의 인력이 아니라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동료 세대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대 연결의 지점에서 본 한국 사회
이제 한국도 이런 변화를 눈여겨봐야 합니다. 우리 역시 간호·돌봄·보건 인력의 부족이 심각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이면 요양병원과 장기요양시설의 간호 인력이 30% 이상 부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병원과 교육기관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하나의 해답은 ‘세대 연결형 직업교육’입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2학년부터 요양보조나 치매 케어의 기초를 배워, 졸업 후 지역 복지기관에서 실습하고 근무하는 모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니어 세대가 할 수 있는 역할도 큽니다. 의료·간호·사회복지 분야에서 은퇴한 전문가들이 청소년 멘토로 나서거나, 현장 실습 지도사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현장 경험의 선배”가 필요하고, 시니어에게는 “경험을 나눌 기회”가 필요합니다. 그 두 세대가 만나면 사회는 더 단단해집니다.
직업의 가치, 삶의 의미를 다시 묻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병원이 싫었지만, 이제는 사람을 돕는 일이 멋지다고 느껴요.”
그 짧은 말 속에는 ‘일’이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니라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은퇴 후 다시 사회 참여를 고민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유용하다고 느낄 때 삶의 활력이 생깁니다. 그것은 청소년에게도, 시니어에게도 같습니다.
병원이 10대를 교육하는 이유는 단지 ‘직원 확보’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돌보는 사회적 연대의 복원입니다. 의료현장은 생명과 돌봄의 상징적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세대가 연결될 때, 사회 전체가 회복의 길로 나아갑니다.
앞으로의 과제: 한국의 현실 속 적용
한국의 교육 제도는 여전히 입시 중심적이고, 직업교육은 부차적인 영역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지금, ‘현장 기반 직업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사례처럼 지방의료원, 대학병원, 보건소가 지역 고등학교와 협력하여 의료 인력 직업체험 과정을 운영한다면, 청소년은 일찍부터 진로 방향을 탐색할 수 있고, 지역은 안정적인 인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간호, 물리치료, 치매 케어, 응급처치 등은 빠르게 노령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매우 실용적인 분야입니다.
시니어 세대의 참여도 중요합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활성화될수록, 은퇴자들이 교육 보조인력, 멘토, 자원봉사자로 참여할 기회가 많아집니다. 경험은 다시 사회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세대를 연결하는 ‘배움의 사슬’
병원이 학생을 가르치고, 학생이 환자를 돌보며, 시니어가 그 곁에서 조언하는 사회. 이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의 모습입니다. 의료 인력난은 위기이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가능성도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세대 간 단절을 해소하고, ‘배움’이 나이를 초월해 이어지는 사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가 젊은 세대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지식이 아니라 마음의 유산, 즉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병원이 교실이 되는 시대, 그 안에서 세대는 다시 이어지고, 사회는 더 건강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