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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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黒子(くろこ, 쿠로코, 검은 옷의 사람, The Men in Black)

일본의 전통 가부키(歌舞伎) 연극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무대 위에서 보이는 것 중 일부를 의식적으로 무시해야 한다’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외국인 관객들은 종종 이 점을 모르기 때문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배우 옆에서 바쁘게 움직이며 의상을 갈아입히는 장면을 보고 혼란스러워합니다. 이들이 바로 ‘黒子(くろこ, 쿠로코, 검은 옷의 사람, The Men in Black)’, 즉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쿠로코는 무대 위에서 분명히 눈에 보이지만, 일본 문화에서는 “보지 않는 것이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미학의 상징으로 간주됩니다. 가부키의 쿠로코를 ‘없는 존재’로 간주하고 극에 몰입하는 태도는, 일본 사회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역사적으로 일본에는 ‘그림자 무사(影武者, かげむしゃ, 카게무샤)’처럼 실제 인물이 아닌 대리인을 내세우거나, ‘숨은 두목(隠れ親分, かくれおやぶん, 카쿠레 오야붕)’처럼 뒤에서 지휘하는 문화가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뒤에서 움직이는 힘’은 오늘날 일본의 정치와 비즈니스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대 일본의 기업 협상에서도 ‘쿠로코’의 역할은 종종 등장합니다. 고위 간부가 명함을 주지 않거나, 일부러 말없이 앉아 있다가 협상 막바지나 교착 상태가 되었을 때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본인들조차도 협상 테이블에서 누가 진짜 쿠로코인지 정확히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는 일본 사회의 겸손, 신중함, 그리고 보이지 않는 권위의 미학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 개념은 단순히 공연예술의 용어를 넘어, 일본 사회에서 드러나지 않게 작동하는 권력과 관계의 구조를 상징하는 문화 코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공연장이나 촬영장에서, 결혼식장에서 검은 옷을 입고 주인공을 돕는 일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黒子(くろこ, 쿠로코, 검은 옷의 사람, The Men in Black)’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