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04일
11-3-1800#100

– 禊 (みそぎ, 미소기, Wiping the Slate Clean)

고대 일본에서 가장 일반적인 신도(神道, Shinto) 의식 중 하나는 강이나 시냇물에서 목욕을 하며 모든 영적 부정(기독교 용어로는 ‘죄’)을 씻어내는 의식이었습니다. 이 의식은 ‘禊 (みそぎ, 미소기, Wiping the Slate Clean)’ 라고 불렸습니다. 사람들은 물에 몸을 담그면 잘못된 행위에 대한 죄책감뿐 아니라 육체의 먼지와 땀까지 씻긴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미소기는 신도와 기독교가 공유하는 상징적 의식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일본에서 이 고대의 형태를 원형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은 신사(神社)의 신관(神官)과 일부 헌신적인 신도들뿐입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일본인은 여전히 물의 정화력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미소기’라 부르지 않을 뿐 자신의 방식대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현대 일본에서 ‘禊 (みそぎ, 미소기, Wiping the Slate Clean)’라는 단어는 종종 전혀 다른 의미로 뉴스 매체에 등장합니다. 부패 혐의나 불법 행위로 비난받은 정치인이 재선에 성공하면, 그 선거 자체가 ‘미소기’라고 불립니다. 왜냐하면 그 정치인이 자신을 모든 ‘죄’에서 정화된 존재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물속 세례를 통해 죄가 씻긴다고 믿는 기독교의 세례와도 비슷한 사고방식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0년대 후반 첫 일본 총선 이후, 거의 모든 선거에서 일부 후보자들이 개인적인 ‘禊 (みそぎ, 미소기, Wiping the Slate Clean)’를 위해 선거를 이용하거나 시도해 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후보가 얼마나 악명 높고 금액이 얼마나 컸느냐에 따라 오히려 재선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권자들은 그가 다시 당선되면 모든 부패가 ‘씻겨졌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정치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1918~1993) 입니다. 그는 16회 중의원 의원으로 재직했고 1972년부터 1974년까지 일본 총리를 역임했습니다. 가난한 니가타(新潟)현 출신으로, 일본 역사상 세 번째 ‘평민 출신’ 총리였던 그는 부패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나 국민의 지지를 얻으며 ‘정치적 미소기’를 반복했습니다. 1983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그에게 일본 전체 후보 중 최다 득표를 안겨주었는데, 언론은 이를 ‘대미소기(The Great Misogi)’ 라고 불렀습니다.

‘미소기’는 단순한 종교 의식이 아니라, 일본 사회의 ‘정화(浄化, purification)’와 ‘리셋(reset)’ 개념을 상징합니다. 물을 통해 모든 부정과 죄를 씻어내고 새로 시작한다는 신앙은 일본인의 정신세계 깊숙이 자리합니다.

정치인들의 ‘미소기 선거’ 현상은 이 종교적 정화 의식이 사회적 용서의 메커니즘으로 전이된 사례입니다. 즉, 일본인에게 ‘재선’은 단순한 정치적 복귀가 아니라 사회적 속죄와 복권(復権)의 상징으로 작동합니다.

신도적 세계관에서 ‘죄’란 영원한 낙인이 아니라 정화 과정을 통해 제거 가능한 오염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미소기’는 인간이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깨끗하게 출발할 수 있다는 일본적 낙관주의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나쁜 것은 쉬이 전파되고 어렵지 않게 그대로 따라하게 되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