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사람들과 마주 앉아 있다 보면, 그들이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말하려다 말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원래라면 느껴져야 할 감정이 표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손끝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습관만이 대신 올라오는 그런 시간입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기술은 그 속도를 더욱 재촉했습니다. 우리는 편리함을 얻었지만, 반대로 우리 내면의 섬세한 감정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가장 정확히 보여주는 장면은 일상의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나타납니다. 가족과 밥을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은 식탁 한가운데에 놓여 있고, 대화가 끊어지면 자연스레 화면을 켭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말을 할 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SNS를 확인합니다. 마치 화면 속에서 더 중요한 무언가가 계속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그렇게 많은 정보와 소식을 접하고도 정작 마음은 더욱 공허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변화는 시니어 세대에게 조금 다른 무게로 다가옵니다. 스마트폰을 ‘도구’로 받아들였던 세대이기에, 기술을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요즘의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우리의 감정 반응과 행동 패턴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환경입니다. 이 환경 안에서 시니어들은 경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감과 정서적 단절을 느끼곤 합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감정을 느끼는 방식까지 기술이 바꾸고 있는 건 아닐까?”
감정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불안이 올라오면 잠시 멈춰 서서 그것을 바라보는 여유가 있어야 하고, 슬픔이 찾아오면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내주며 의미를 되짚어봐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감정이 조금만 불편해지면 바로 스마트폰을 켜거나, TV를 틀거나, 인터넷을 뒤적입니다. 감정과 마주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자연스러운 습관처럼 자리잡은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감정을 느끼는 일이 너무 버겁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뒤를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경우 그 감정에는 외로움이라는 오래된 친구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외로움은 종종 피로와 분노의 탈을 쓰고 나타나기 때문에 스스로도 그것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합니다. 스마트폰은 그들이 이 감정과 직접 마주하지 않도록 아주 손쉽게 도와주는 장치가 됩니다.
기술은 우리에게 감정을 측정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심박수를 계산해 주고, 스트레스 지수를 알려주며, 수면 상태를 분석합니다. “오늘은 피곤한 날입니다”라는 기계의 문장은 어느 순간 “오늘 나는 피곤하다”라는 우리의 감각을 이겨버립니다. 감정이 애매할 때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기보다 기계를 먼저 확인합니다. “내가 기분이 다운된 건가? 아니면 수치가 잘 나온 걸까?” 이렇게 감정은 점점 숫자로 환원되고, 감정의 깊이는 더 얇아집니다.
젊은 세대는 이런 변화에 비교적 빠르게 적응합니다. 감정을 메시지나 짧은 문장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니어 세대는 오랜 시간 대화를 통해 감정을 나누어 왔고, 만남과 이야기 속에서 정서를 확인하며 관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스마트폰 중심의 소통은 시니어에게는 익숙한 정서 교류 방식을 빼앗고, 감정 표현의 통로를 좁히기까지 합니다. 그 결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외로움이 더 깊은 층에서 성장하기도 합니다.
최근 인공지능 챗봇이 널리 사용되면서, 정서적 혼란은 새로운 방식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한순간에는 사람처럼 느껴지다가도, 그다음에는 기계적인 반응만 나옵니다. 우리는 타인이 주는 온기와 기계적 응답의 온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때로는 그 차이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합니다. 기술은 우리가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주고, 말을 건네고, 감정을 이해하려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인간적 정서를 대신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희망은 분명 존재합니다. 기술의 부정적 영향을 연구하는 흐름이 등장하면서 젊은 세대조차 소셜미디어의 피로감을 자각하기 시작했고, 오히려 감정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지?”라는 단순한 질문이지만,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다시 감정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외국의 한 연구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감정은 우리 삶을 건너가는 강물이다. 기술은 다리일 수는 있지만, 강 자체가 되지는 못한다.” 이 말은 시니어 세대에게 더욱 깊게 와닿습니다. 인생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잃어버린 것들과 얻은 것들은 모두 감정의 강물 속에서만 흐를 수 있고, 기술은 그 강을 관찰하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은 분명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했고, 때로는 외로움 속에서 벗어나는 작은 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술 속에서 감정이 희미해지는 순간, 우리는 인간다움의 핵심을 잃게 됩니다. 감정을 느끼는 능력은 인간만이 가진 특별한 재능이며, 나이가 들수록 그 깊이는 더 넓어집니다.
감정을 되찾는 일은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 창밖의 바람을 바라보는 몇 분, 혹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요즘 잘 지내느냐”고 묻는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또, 기도나 묵상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 앞에서 나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순간도 깊은 회복의 시간을 제공합니다. 감정을 느끼는 능력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기술의 소음 속에 잠시 묻혀 있을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작은 감정의 신호를 다시 듣는 것입니다. 불편하더라도 그 감정을 지나치지 않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인간적 품위일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우리의 감정을 대신 느껴 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다운 삶의 중심을 다시 되찾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