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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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철학자의 칼럼이 던진 물음

인공지능(AI)이 사람을 대신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복잡한 계산과 단백질 합성까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시(詩)를 짓고 논문을 작성하는 영역마저 기계가 넘보는 지금, 많은 시니어 독자께서는 자연스레 한 가지 근본적인 물음 앞에 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두려움이 섞인 이 질문에, 최근 한 편의 철학 칼럼이 뜻밖의 차분한 답을 내놓아 주목을 받았습니다.지난 6월 11일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El País)에 실린 철학자 산티아고 알바 리코(Santiago Alba Rico)의 칼럼이 그것입니다. 그는 브라질 상파울루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은 18개월 된 아기 ‘안토넬라’와 함께한 일화로 글을 시작합니다. 곱슬머리에 까만 눈동자를 가진 이 어린 승객은 비행 내내 안전벨트를 풀었다 끼웠다 하며 옹알이로 말을 걸어 왔고, 저자는 그 무방비한 사랑스러움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저자의 진단은 냉정합니다. 능력의 경쟁이라면 인류는 이미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기억하고 계산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거의 모든 일에서 AI는 사람을 앞질렀거나 곧 앞지를 것이라고 그는 인정합니다. 사람이 가르친 모든 것을, 한계가 없는 자원으로 더 잘 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만이 여전히 할 수 있고 기계는 하지 못하는 두 가지가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일’과 ‘죽음을 맞이하는 일’입니다.

먼저 어린 시절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그것을 밤의 두려움과 낮의 어른들 사이에서 기쁘고도 수고롭게 ‘인간의 몸’을 얻어 가는 과정이라 풀이합니다. 지능은 신체와 분리될 수 있어도, 어린아이는 그럴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은 누군가의 손끝에 만져지고 보살핌을 받는 관계 속에서만 성립하는, 연약함의 생생한 현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한계와 취약함이란 고쳐 없애야 할 ‘오류’가 아니라, 도리어 사람이 온전히 피어나기 위한 조건이라고 강조합니다.

죽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유한한 존재이기에 비로소 사람이 세 가지를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유와 사랑, 그리고 웃음입니다. 언젠가 끝이 있음을 알기에 깊이 생각하고, 남의 존재를 아프게 마음에 두기에 사랑하며,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 앞에서 약한 이도 강한 이와 동등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계가 없는 지능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자질이라 하겠습니다.

이 통찰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우리 사회에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핵심은 ‘돌봄’입니다. 저자는 여가를 벌어 주는 똑똑한 세탁기는 반길 일이지만, 어떤 사람도 기계도 우리를 대신해 우리 아이를 길러 주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고 단언합니다. 어머니를 로봇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우리가 더 행복해지거나 자유로워지지는 않으며, 다만 서로를 보살피는 법을 잊게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돌봄 인력의 부족과 기술 도입을 동시에 마주한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효율을 이유로 사람의 자리를 기계에 통째로 넘기는 것이 과연 진보인가를 되묻게 하기 때문입니다. 평생에 걸쳐 가족을 돌보고 마을과 공동체를 지탱해 온 시니어 세대야말로, 돌봄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일의 경험과 지혜를 가장 깊이 간직한 분들입니다. 그 경험은 어떤 기계도 단숨에 복제할 수 없는 사회적 자산입니다.

저자가 내놓는 결론은 명료합니다. 증기 기관차가 사람보다 빨리 달리게 된 지 두 세기가 가까워 오지만, 인류는 달리기를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조깅을 하고 마라톤을 뜁니다. 마찬가지로 AI가 글을 더 잘 쓰게 되더라도 사람은 자기만의 문장을 써 나가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을 여느 동물과 구별 짓는 능력, 곧 ‘말하는 법’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계의 편리함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습니다. 일상의 수고 가운데 일부를 기술에 맡기는 것은 분별 있는 선택입니다. 다만 돌봄과 글쓰기와 말하기처럼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몸짓만큼은 끝내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는 것 ― 이것이 오랜 삶의 질서와 인간의 존엄을 지켜 온 시니어 세대가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분별이라 하겠습니다. 새로운 기술 앞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막연한 두려움도, 무비판적 환호도 아닌,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맡길지를 가려내는 차분한 지혜일 것입니다.

[출처] 이 칼럼은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El País) 2026년 6월 11일 자 오피니언 면에 게재된 철학자 산티아고 알바 리코의 기고문 ‘La niña y la IA(소녀와 인공지능)’의 논지를 바탕으로, 캐어유 뉴스의 편집 방향에 맞추어 재구성·해설한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 핵심 논지만을 정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