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과 자유 사이, 기술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도로변에 선 카메라 한 대가 미국 사회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자동으로 읽어 기록하는 감시 장비가 훼손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가 지난 8월 19일 자로 전한 바에 따르면, 동부 테네시주에서 강 안내인으로 일하며 무소속 연방 하원의원 후보로 출마한 서른일곱 살의 애덤 하이머먼 씨는 지난 7월 예배가 진행 중이던 교회 인근의 장비를 포함해 모두 네 대의 카메라에 총격을 가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대학생, 컴퓨터 기술자, 심지어 공군 소속 기술자까지 유사한 혐의로 고발되었고, 미네소타주 위노나에서는 시내에 설치된 여덟 대가 모두 절단된 뒤 사라졌습니다.
문제의 장비는 자동 번호판 인식기(ALPR·Automated License Plate Recognition)라 불립니다. 감시 장비 위치를 시민들이 직접 등록하는 사이트 디플록(DeFlock.org)의 집계로는 미국 전역에 13만 대 이상이 설치되어 있다고 합니다(집계 주체가 민간 크라우드소싱이므로 수치는 확인이 필요합니다). 대표 기업인 플록 세이프티는 6천 개가 넘는 지역사회에서 장비를 운영하며 월 200억 건의 번호판 기록을 수집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수사에는 유용하나, 기록은 남습니다
이 기술의 효용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운영사는 자사 장비가 지난해 발생한 대학 총격 사건의 범인 신원을 특정하는 데 기여했다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이 장비가 특정 범죄자만을 골라 보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병원을 드나든 기록, 사격장을 찾은 기록, 특정 판매점 앞을 지나간 기록이 모두 남습니다. 정부 감시를 감독하는 비영리 단체의 연구 책임자 엘레니 마니스 씨는 원하는 때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자유가 침해되는 사안이기에 이 비판이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우려는 현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전·현직 연인을 추적하는 등 인가되지 않은 목적으로 장비를 사용한 혐의로 최소 50명의 경찰관이 기소되거나 고발되었습니다. 이민 당국 요원들이 지역 기관을 경유해 전국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운영사는 검색 시 형사 사건 번호 기재를 의무화하고 데이터 보관 기간을 30일에서 7일로 줄이는 개선안을 내놓았습니다. 최근 몇 달 사이 100곳의 지방자치단체가 계약을 중단하거나 해지하였습니다.
분노의 정체는 기술이 아니라 절차입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반발의 성격입니다. 시민들은 기술 자체를 몰라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동의한 적 없는 감시가 조용히 늘어났고, 반대 의견을 전달할 통로가 막혀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하이머먼 씨 역시 조용히 편지나 쓰라는 조언에 사람들이 지쳤다는 취지로 말하였습니다. 우파 논객 터커 칼슨 씨가 훼손 행위자들을 애국적 시민으로 묘사하고, 반대 진영의 정치 활동가 릭 윌슨 씨가 장비를 방해하는 도구를 방송에서 언급한 사실은 이 사안이 좌우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의 변호 비용 모금 사이트에는 1만 3천 달러(약 1,807만 원, 1달러 1,390원 기준·환율은 게재 전 확인 필요)가 넘게 모였습니다.
그러나 본지는 이 저항 방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유든 공유든 타인의 재산을 파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미시간주 워터포드 경찰은 스물네 살 피의자가 카메라를 훼손하던 차량의 번호판이 바로 그 카메라에 찍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감시가 싫어 감시 장비를 부수다가 감시에 걸린 셈이니, 이보다 분명한 역설도 드뭅니다. 온라인에서 허위 알리바이를 대신 제공하는 행태 또한 공동체의 신뢰를 갉아먹을 뿐입니다.
우리 사회가 먼저 점검해야 할 것들
한국은 미국보다 폐쇄회로 텔레비전과 차량번호 인식 설비가 훨씬 촘촘한 나라입니다. 아파트 주차장, 공공 청사, 도심 도로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설비는 시니어 세대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어 왔습니다. 인지 저하로 길을 잃은 분을 찾아내고, 야간 골목의 범죄를 억제하며, 뺑소니 차량을 추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안전을 지키는 장치를 무턱대고 걷어내자는 주장은 무책임합니다.
다만 우리가 미국의 사례에서 배워야 할 것은 기술의 존폐가 아니라 관리의 원칙입니다. 누가, 어떤 근거로, 얼마 동안 기록을 보관하고 열람하는지가 명확해야 합니다. 열람 사유를 기록으로 남기고, 목적을 벗어난 조회를 실질적으로 제재하며, 보관 기간을 필요한 최소한으로 정하는 일은 기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오래 쓰기 위한 조건입니다. 지원과 요구는 함께 가야 합니다. 공적 안전을 위한 장비 도입을 지원하되, 운용 주체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절차적 책임을 엄격히 요구해야 합니다.
시니어의 경험이 필요한 자리입니다
우리 세대는 통금이 있던 시절과 지문 날인이 당연하던 시절을 지나, 손 안의 기기 하나로 모든 것이 기록되는 시대까지 살아왔습니다. 안전이 절실하다는 것도 알고, 안전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쉽게 남용될 수 있는지도 압니다. 그 균형 감각은 어느 세대도 대신 갖지 못하는 자산입니다.
기술을 부수는 손이 아니라, 규칙을 세우는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질서를 지키면서도 자유를 잃지 않는 길을 찾는 일, 그것이 우리 시니어 세대가 이 사회에 내어놓을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기여라고 생각합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