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ZDF 다큐 〈37도〉가 그린 시니어의 재출발
에센의 두 시니어, 일자리와 이웃 공동체를 다시 세우다
독일에서 은퇴연령을 넘긴 근로 인구가 향후 10년간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독일 현지 매체가 연방통계청(Statistisches Bundesamt)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36년까지 정년을 넘긴 근로자가 약 1,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고령화가 단순한 인구통계의 문제가 아니라,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사회 전체의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많은 시니어에게 은퇴 후의 생활은 예상보다 단조롭게 느껴지며, 의미 있는 활동을 통해 삶을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욕구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현지 보도의 지적입니다.
이 같은 흐름을 정면으로 다룬 다큐멘터리가 최근 독일에서 방영되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독일 공영방송 체트데에프(ZDF)의 대표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37도(37 Grad)〉는 지난 9월 1일 화요일 저녁, ‘노년의 재출발(Durchstarten im Alter)’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를 통해 은퇴 이후에도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두 시니어의 실제 삶을 조명했습니다. 해당 방송은 오는 9월 8일 자정 3sat 채널을 통해 재방송될 예정입니다.
에센의 두 시니어, 다시 문을 열다
이 다큐멘터리의 무대는 독일 서부 에센(Essen)시의 보르베크(Borbeck) 지구입니다. 산업구조 변화로 활력을 잃은 이 지역은 오늘날 세탁소와 오락실이 주를 이루는 쇠퇴한 동네로 변모했지만, 1900년 이전부터 이 일대에서 유일한 식당으로서 지역 주민들의 세례식과 결혼식, 장례 후 모임이 열리던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중 한 명인 군터 링에스(Gunther Linges, 77세)는 에센 토박이로, 은퇴 후에도 가만히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는 성격이며, 사람들과의 접촉이 필요하고 사회에 어떤 형태로든 계속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뷰티숍을 운영하는 65세의 아내 베아테와 함께 구인 정보를 살펴본 끝에 새 일자리를 찾아냈습니다. 컴퓨터 사용 경험이 전무했던 그는 19세의 동료 벤 슈나이더로부터 디지털 계산대 사용법을 설명받았으나, 실제 근무 중에는 이를 직접 조작하지는 않는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새로 일을 시작한 곳은 ‘분더튀테(Wundertüte, 독일어로 복주머니라는 뜻)’라는 이름의 식당입니다. 이 식당은 또 다른 주인공인 요르크 다우베(Jörg Daube, 69세)가 4년 전 코로나19 여파로 문을 닫은 그리스 식당 자리를 인수해 다세대 교류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입니다. 본업이 변호사인 다우베는 경력전환자(Quereinsteiger) 신분으로 식당 경영에 뛰어들었으며, 손님들이 단순히 자리에 앉아 식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넘나들며 서로를 적극적으로 알아가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도전이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식당이 위치한 거리에 신설 경전철(Citybahn) 노선 공사가 추진되면서 식당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으며, 이에 다우베를 비롯한 식당 운영진과 손님, 지역 주민들은 경전철 노선 확장에 반대하는 주민 모임을 결성해 대응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숙련인력 부족과 외로움이 만든 역설
전문가들은 이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현상의 배경으로 독일 사회가 안고 있는 세 가지 구조적 문제, 즉 숙련인력 부족현상(Fachkräftemangel)과 지역 산업구조의 변화(Strukturwandel), 그리고 고령층의 고립 문제가 맞물리면서 참여와 공동체 의식에는 정년이 따로 없다는 점을 이 프로젝트가 보여준다고 평가합니다. 링에스는 은퇴 이후 다시 도전에 나서는 것이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라고 여기며, 다우베는 자신이 속한 동네가 쇠퇴해 가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낡은 전통 식당을 되살렸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세 가지 문제가 겹치면서, 시니어의 사회 참여는 개인의 필요를 넘어 지역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요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
한국 역시 2025년을 기점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유사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정년 이후에도 경제활동이나 사회활동을 지속하고자 하는 시니어가 꾸준히 늘고 있으나, 이들을 받아들일 일자리와 세대 교류 공간은 여전히 제한적인 실정입니다. 독일 에센의 사례처럼 지역 상권의 쇠퇴와 세대 간 단절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시니어의 경험과 노하우를 지역사회로 되돌리는 구조를 만드는 일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활기찬 노년기(Active Aging)의 가치는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의료비 절감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실질적 효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입니다.
그러나 시니어의 사회 재참여를 단순히 훈훈한 미담으로만 소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우베의 식당이 경전철 공사로 존립을 위협받는 사례에서 보듯, 시니어들의 자발적 도전은 제도와 지역 행정의 뒷받침이 없이는 언제든 좌초할 수 있습니다.
시니어 세대의 근면함과 공동체 정신이라는 전통적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합리적인 제도적 기준, 즉 일자리 연계와 지역 소상공인 보호, 세대 간 교류 공간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함께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은퇴는 사회로부터의 퇴장이 아니라, 오랜 경험을 다음 세대와 나누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