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자르 카바니(Nizar Qabbani)는 시리아 출신의 시인이자 비평가로서, 아랍인의 3,000년 역사 중 ‘재출현기(RE-EMERGENCE: 1800년–현재)’의 주요 인물로 언급됩니다. 그는 아랍 세계의 고통스러운 현실과 좌절된 이상을 가장 첨예하게 비판하고 시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카바니는 언어(Word)가 아랍 역사의 중심 동력임을 깊이 인식하면서도, 이 언어가 어떻게 독재와 통제의 도구로 변질되었는지를 폭로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 아랍 역사의 비극적 순환에 대한 통찰 (모래시계 은유)
카바니는 아랍 역사의 특징인 끊임없는 통일과 분열의 순환, 그리고 과거의 그림자가 현재를 억압하는 현상을 강력한 이미지로 포착했습니다.
- ‘모래시계’의 은유: 카바니는 영원히 현재하는 아랍의 과거를 “밤낮으로 당신을 삼키는 모래시계(the hourglass that swallows you Night and day)”로 묘사했습니다. 이 모래시계의 바닥에 있는 모래는 “다음 사건의 전환을 기다리는 인간의 삶, 혹은 인간의 죽음(human lives, or human deaths)”이며, 사람들은 이 모래(역사)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유동적인 덫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역사가 단순한 시간 측정 수단이 아니라 종종 악의적인 행위자(a player in its own right, often malevolent)로 작용함을 암시합니다.
- 현재의 억압: 그는 아랍 세계 전반에 걸쳐 존재하는 경향, 즉 “과거를 영원한 현재로 만들려는(to make the past ever present)”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Adonis)의 논평을 상기시키며, 이러한 ‘영원한 현재의 과거(ever-present past)’가 미래를 포괄하는 동시에 제한하고 억압하는(confines) 무거운 존재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2. 아랍 정치 현실 및 ‘언어’의 오용 비판
카바니는 아랍 지도자들이 사용하는 수사학이 진정한 진실이나 발전을 가로막는 기제임을 명확히 비판했습니다.
- 언어의 통제와 집단 연대(’asabiyyah): 그는 아랍 지도자들이 “말(words)”을 사용하여 대중에게 “모르핀 주사(shots of morphine)”와 같은 것을 주입하며 대중을 마비시키고 통제해왔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7세기 이후 통치자들이 대중을 중독시킨 방식과 같습니다.
- ‘통합된 말(gathered word)’의 부작용: 카바니는 집단 연대(’asabiyyah)를 만들기 위해 ‘말을 모으려는(to gather the word)’ 목표가 개인의 목소리(the individual voice)를 억압하고 침묵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보았습니다. 독재자들이 “언어의 힘”을 이용하여 “대중을 마비시키는 옛 마법(old mesmerizing magic)”을 펼치며 통일(unanimity)을 강요해왔음을 비판했습니다.
- 전쟁과 수사학의 허상: 그는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패배(Catastrophe) 이후, “우리가 전쟁에 진 것이 당연하다(If we lost the war, no wonder)”고 통탄하며, 아랍인들이 전쟁에 나갈 때 “동양인이 가진 모든 연설 재능”과 “파리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한 안타르의 노래(Lays of Antar)”와 같은 수사학만을 들고 나섰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는 말이 현대 무력을 이길 수 없음을 직시한 솔직한 고백이었습니다.
3. 현대 아랍 문명의 절망과 실망의 상징
카바니의 시는 현대 아랍 세계가 겪는 절망(disappointment)의 감정을 깊이 반영합니다.
- 패배와 실망의 기록: 그는 1967년 전쟁 패배 이후 발표한 시에서 “당신은 전쟁에서 두 번 졌다 / 왜냐하면 우리 인구 절반은 혀가 없기 때문이다(You have lost the war twice / Because half our people have no tongue)”라고 노래하며, 독재 정권 하에서 대중이 침묵당한 현실이 패배의 근본 원인임을 강조했습니다.
- 역사의 종언: 그는 아랍 세계의 침체와 정체가 ‘역사의 정거장(the station of history)’에 갇힌 것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우리가 온 이후로 시계는 고장 났습니다. /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We’re waiting for the train / Broken, since we came, is the clock of the years / Time does not pass)”라고 읊조리며, 자신들을 “역사의 정거장에 양처럼 갇혀 있는(imprisoned like sheep in the station of history)” 존재로 묘사했습니다. 이는 희망과 진보가 멈춘 아랍 세계의 상태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처럼 니자르 카바니는 당대의 정치적, 사회적 현상을 통찰하고, 아랍 문명 내부의 고질적인 문제, 즉 언어와 권력의 상호 작용 속에서 발생하는 비극적인 순환을 시대를 초월하는 비판적 목소리로 담아낸 주요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