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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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호르의 한 거리에서 벌어진 일

파키스탄 제2의 도시 라호르의 마울라나 샤우카트 알리 로드는 제과점과 정육점, 샌드위치 가게가 늘어선 평범한 중산층 상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리에 똑같은 물건을 파는 쇼룸이 여섯 곳이나 들어섰습니다. 파는 물건은 전기 오토바이입니다.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올해 일곱 번째 매장이 문을 열었고, 곧 여덟 번째가 뒤따랐습니다. 모퉁이를 돌면 또 두 곳이 영업 중입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파키스탄에 전기 오토바이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블렉트라(Vlektra), 졸타(Jolta) 같은 신생 브랜드가 매주 등장하며 그 수가 84개 기업을 넘어섰습니다. 자금이 부족한 영세 업체, 벤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시장성을 보고 뛰어든 기존 대기업이 뒤섞여 있습니다. 매시 퍼거슨 트랙터를 만들던 제조사마저 전기 오토바이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쟁이 앞당긴 에너지 전환

이 열풍의 직접적인 방아쇠는 이란 전쟁입니다.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개발도상국 서민들이 얼마나 빠르게 화석 연료에서 이탈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펼쳐진 것입니다.

원래 전기 이륜차는 휘발유 모델보다 구매 가격이 비쌉니다. 그러나 연료비 격차가 이 부담을 뒤집었습니다. 연료 탱크를 채우는 것보다 배터리를 충전하는 편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시장조사기관 모터사이클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파키스탄의 전기 이륜차 판매는 173퍼센트 증가했습니다. 현지 최대 판매업체 이비(Evee)의 영업 이사는 4월부터 6월까지 석 달간 9만 대가 팔렸다고 밝혔는데, 이는 지난해 연간 판매량 11만 2천 대에 육박하는 수치입니다. 파키스탄의 연간 전체 오토바이 판매량이 약 190만 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변화의 속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같은 흐름은 베트남과 아프리카에서도 확인됩니다. 케냐에서는 신규 오토바이 판매의 4분의 1에서 3분의 1가량이 전기 모델이라고 현지 업계 관계자는 전합니다. 한 창업자는 이번 에너지 충격이 모든 흐름을 두 배로 증폭시켰다고 표현했습니다.

중국산 조립 키트와 1퍼센트 관세

주목할 대목은 이 산업이 만들어진 방식입니다. 일부 파키스탄 기업은 국산 차체와 타이어를 쓰되 배터리와 모터는 중국산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상당수는 거의 전적으로 중국에 기댑니다. 조립하기 쉽게 포장된 완제품 키트를 수입해 로고만 붙이면 되는 방식입니다. 중국 우시 지역에는 이런 맞춤형 키트를 공급하는 업체가 즐비하고, 라호르 무역 박람회에서는 중국 업체 담당자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회사를 창업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으며 85종의 디자인 브로셔를 건넸다고 합니다.

대기 질 개선이 절박한 파키스탄 정부는 이러한 수입품에 관세를 단 1퍼센트만 부과하고 있습니다. 라호르 연구에 따르면 교통 부문이 전체 대기 오염의 83퍼센트를 차지하고, 스모그로 시민 기대 수명이 평균 6년 단축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석유 제품이 전체 수입의 약 30퍼센트를 차지해 유가가 오르면 외환 보유고가 마르고 물가가 뛰는 구조적 취약성도 배경에 있습니다.

친숙함을 설계한 창업자

뉴욕 헤지펀드에서 일하던 시에드 라자 모신 씨는 테슬라 판매 실적을 보며 4만 달러(약 5,600만 원)가 넘는 차량을 전제로 한 전기차 전환에서 조국이 소외되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귀국해 약 1,000달러(약 140만 원)짜리 전기 이륜차 개발에 나섰습니다.

그가 겨냥한 기준점은 40년간 외형이 거의 변하지 않은 국민 오토바이 혼다 CD 70이었습니다. 연료 게이지조차 없지만 몬순 홍수와 거친 시골길을 견디고 중고 가격이 잘 유지되는 모델입니다. 그래서 그가 내놓은 전기 모델에는 휘발유 탱크가 없는데도 순전히 장식용인 연료 캡이 달려 있습니다. 친숙함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부품 국산화는 여전히 과제로, 마감 품질이 일정하지 않고 올봄에는 석 달에 이르는 배송 지연으로 혹평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읽어야 할 대목

이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첫째, 에너지 전환은 이념이나 구호가 아니라 생활비 계산에서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월급의 8퍼센트를 연료비로 쓰던 사람이 전기로 옮겨간 이유는 환경 신념이 아니라 산술이었습니다. 10년간 자신의 혼다를 최고의 미녀라 부르던 애호가조차 몇 루피를 아낄 수 있다면 기꺼이 바꾸겠다고 말했습니다.

둘째, 산업 정책의 방향입니다. 파키스탄은 관세를 낮춰 전환 속도를 얻었지만 제조 역량은 중국에 넘겨주었습니다. 속도와 자립 사이의 선택은 결코 공짜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도 전기 이륜차와 배달 차량, 시니어 이동 수단을 논할 때 이 균형을 냉정하게 따져야 합니다.

셋째, 시니어 세대의 시선입니다. 우리는 석유 파동과 급격한 산업 전환을 몸으로 겪은 세대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값싼 수입에 기대다 기반을 잃었던 경험도, 반대로 과감한 전환으로 활로를 찾았던 경험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그 경험이야말로 유행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변화를 외면하지 않는 판단의 근거입니다.

전환은 막을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전환이 안전 기준과 품질, 그리고 우리 산업의 뿌리를 함께 지키며 이루어지도록 요구하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새것을 무조건 반기지도, 옛것에 무작정 매달리지도 않는 균형이 지금 필요합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