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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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거리 의학’이 던지는 질문 — 스스로 병원에 오지 못하는 시니어는 누가 돌보는가

병원 문 앞에서 멈춰 서는 사람들

의료 제도의 성패는 흔히 병원 안에서 측정됩니다. 의료진의 수준, 장비의 성능, 수술 성공률 같은 지표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지표에는 한 가지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환자가 스스로 병원 문을 열고 들어온다는 전제입니다.

이 전제가 무너지는 지점에 시니어가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해 버스 두어 번을 갈아탈 수 없는 분, 인지 기능이 떨어져 예약 시간을 지키기 어려운 분, 과거의 진료 경험에서 상처를 입어 병원 자체를 기피하게 된 분들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하면 오시라”는 말은 사실상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미국이 30여 년에 걸쳐 확인한 것

미국에서는 1990년대에 짐 위더스(Jim Withers) 박사가 병원 밖으로 나가 취약계층을 직접 진료하기 시작했고, 이 방식은 오늘날 ‘거리 의학(Street Medicine)’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150개 이상의 프로그램으로 확산되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습니다.

주목할 것은 성과 지표입니다. 남캘리포니아대학교(USC) 프로그램의 경우 대상 환자의 응급실 방문이 약 80퍼센트 줄었고, 입원 기간은 평균 2.5일 단축되었으며, 재입원율은 3분의 2가량 감소했다고 합니다. 매일 수개월간 약을 복용해야 하는 C형 간염 치료에서도 완치율이 80퍼센트를 넘었습니다. 찾아가는 방식이 온정주의적 시혜가 아니라 임상적으로 유효한 전략임을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미국 공공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Medicaid)는 2023년 10월 이 진료 방식에 처음으로 공식 수가를 인정했습니다. 비주류로 취급받던 활동이 제도권에 들어선 것입니다.

제도권 진입이 불러온 딜레마

그런데 현장의 의료진은 오히려 우려를 표합니다. 제도에 편입되는 순간 이 활동이 생산성 지표와 수익성의 잣대로 평가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환자 한 사람을 찾아내 이동을 돕고 상처를 소독하는 데 한 시간 넘게 쓰는 방식은, 분 단위로 회전율을 계산하는 병원 회계 기준에서는 비효율로 기록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 의료 책임자는 비용 절감이 이 일의 부산물일 수는 있어도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비용만 따진다면 가장 값싼 선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경고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한국 시니어 정책에 주는 시사점

우리 사회에도 방문진료 시범사업, 재택의료센터, 장기요양 재가급여 등 찾아가는 서비스가 이미 존재합니다. 문제는 규모와 지속성입니다.

첫째, 이동 지원의 실효성입니다. 미국 사례에서 환자는 교통 지원 자격이 있어도 사전 예약을 하지 못해 이용에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이동지원 서비스 역시 예약 절차와 대기 방식이 시니어의 실제 생활 조건에 맞는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둘째, 처방의 현실 적합성입니다. 화장실 이용이 어려운 환자에게 이뇨제를 처방하면 복약이 중단됩니다. 주거 환경과 보호자 유무를 고려하지 않은 처방은 서류상으로만 정확할 뿐입니다.

셋째, 수가 체계의 설계입니다. 찾아가는 진료의 가치를 진료 건수가 아닌 응급실 이용 감소, 재입원 억제, 재가 생활 유지 기간으로 측정하는 기준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온정이 아니라 기준의 문제입니다

찾아가는 진료는 동정심의 표현이 아닙니다. 위더스 박사의 표현처럼 소방서와 같은 사회 기반 시설로 이해되어야 할 공공 서비스입니다. 불이 나면 소방차가 출동하듯, 스스로 나올 수 없는 시니어에게는 의료가 찾아가는 것이 원칙이어야 합니다.

다만 저는 무제한의 확대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재원은 유한하고, 세대 간 부담의 형평도 지켜져야 합니다. 필요한 것은 대상의 명확한 기준, 성과의 객관적 측정, 그리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입니다. 지원(Fördern)과 요구(Fordern)는 함께 가야 합니다.

시니어는 돌봄의 수혜자이기 이전에 이 사회의 안전망을 지켜온 세대입니다. 그 세대가 병원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지 않도록 하는 일은 시혜가 아니라 사회가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의 이행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출처: The New York Times, Opinion 지면(A18~A19) 게재 칼럼. 미국 ‘거리 의학’ 현장 취재 기사. 본 칼럼은 원문의 직접 인용 없이 사실관계를 요약·재구성하고, 시니어 정책 관점으로 논지를 재설정한 것입니다.

※ 본문의 수치(응급실 방문 80퍼센트 감소, 입원 기간 2.5일 단축, 재입원율 3분의 2 감소, C형 간염 완치율 80퍼센트 이상, 메디케이드 수가 인정 시점)는 모두 원 기사에 근거한 것으로, 별도의 독립 검증은 거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