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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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할 자리를 고를 때도, 식당을 정할 때도, 심지어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결정할 때도 우리는 같은 질문 앞에서 머뭇거립니다. “혹시 저 모퉁이만 돌면 지금보다 더 나은 선택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익숙한 것을 지킬 것인가, 새로운 것으로 옮겨 갈 것인가.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본 이 선택의 망설임을 두고, 최근 영국과 미국의 학자들이 흥미로운 답을 내놓았습니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8년 세상을 떠난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1970년대 어느 날 캘리포니아의 한 태국 음식점에서 친구와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늘 먹던 단골 메뉴를 그대로 시킬지, 처음 보는 음식을 시도할지 고민하던 친구를 위해 파인만은 그 자리에서 종이에 수식과 그래프를 적어 내려갔다고 합니다. 친구가 평생 간직해 온 이 낙서가 마침내 옥스퍼드대학교와 프린스턴대학교, 뉴욕시립대학교 연구진의 손을 거쳐 해독되었고, 그 결과가 권위 있는 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습니다.

연구진은 2,520명을 대상으로 낯선 도시에 7박, 14박, 28박 동안 머무는 상황을 가정한 모의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매일 저녁 식당을 고를 때마다 그 식당의 품질을 알려 주는 점수를 화면으로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명료했습니다. 머무는 기간이 길수록 사람들은 초반에 새로운 곳을 더 많이 찾아 나섰고, 남은 시간이 줄어들수록 더 나은 곳을 찾으려는 기대를 차츰 낮추며 한곳에 정착했습니다. 이 단순한 방식만으로도 7박 여행자가 평균 이상의 좋은 식당에 안착할 확률은 98.4퍼센트, 28박 여행자는 사실상 백퍼센트에 가까웠습니다.

이 발견의 핵심은 결국 시간이라는 변수에 있습니다. 남은 시간이 넉넉할 때는 새로운 시도가 그만한 값을 합니다. 얻은 정보를 두고두고 활용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사정이 다릅니다. 새 정보의 쓸모가 줄어드는 만큼, 이미 검증된 최선의 선택에 마음을 정하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복잡한 공식을 알지 못해도 본능적으로 이 이치를 따랐고, 그 직관은 정교한 수학 모델에 거의 뒤지지 않았습니다.

이 연구는 시니어 독자에게 각별한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흔히 나이 든 세대가 익숙한 방식을 지키는 모습을 두고 완고하다거나 고집스럽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위 연구가 알려 주는 바는 사뭇 다릅니다. 살아갈 날이 유한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오랜 세월 쌓아 온, 이미 검증된 경험에 더 무게를 싣는 것은 고집이 아니라 가장 이치에 맞는 선택이라는 사실입니다. 수십 년에 걸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결정을 통과하며 시니어가 길러 온 안목은, 그 자체로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자산인 셈입니다.

다만 이 수식이 새로움을 멀리하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파인만의 권고에서 먼저 강조된 것은 오히려 초반의 충분한 탐색이었습니다. 인생의 어느 길목에서든, 굳게 닫아거는 태도보다 적절히 열어 두는 태도가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검증된 것을 든든히 지키는 지혜와, 때때로 낯선 것에 손을 내미는 용기가 함께 갈 때 비로소 균형이 잡힙니다. 요리·여행 프로그램으로 잘 알려진 배우 스탠리 투치 역시 단골 식당으로 돌아갈 때의 편안함을 이야기하면서도, 새로운 요리를 용기 내어 맛보는 즐거움을 나란히 예찬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어느 요리사이자 여행 작가는, 가끔의 실패한 식사를 감수하지 않으면 인생 최고의 한 끼를 만날 기회도 영영 오지 않는다는 취지의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검증된 경험의 가치는 짐이 아니라 안전판이며, 오랜 질서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를 지켜 주는 무게중심입니다. 동시에 지혜로운 삶이란 언제 그 자리를 지키고 언제 한 걸음 내디딜지를 분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분별의 감각이야말로, 숱한 선택을 통과해 온 시니어가 이미 몸으로 익혀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익숙함을 지키되 새로움에 닫히지 않는 균형, 그 오래된 지혜를 한 장의 낡은 메모가 새삼 일깨워 줍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