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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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라는 말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는 분이 적지 않으실 것입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의 경제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Martin Wolf)도 최근 글에서 바로 그 막막함을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12세기 유대 철학자 마이모니데스(Maimonides)가 남긴 당혹스러운 자들을 위한 안내서라는 제목을 빌려, 자신 또한 인공지능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 의미를 헤아리려는 노력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고 고백합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현자는 없으니, 낯섦을 인정하는 일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분별의 출발이라 하겠습니다.

거품인가, 아닌가

울프가 던지는 물음은 단순합니다. 인공지능은 인류에게 축복인가, 재앙인가, 아니면 한때의 거품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먼저 거품에도 두 종류가 있다고 정리합니다. 하나는 진짜 변화가 일어나는데도 시장이 그 값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해 투기로 흐르는 경우로, 19세기 철도 건설 붐이나 1990년대 후반 닷컴 거품이 그러했습니다. 이런 거품은 꺼진 뒤에도 철도망과 광케이블 같은 쓸모 있는 기반을 세상에 남깁니다. 다른 하나는 알맹이가 없는 헛된 거품으로, 18세기 미시시피 거품과 남해회사 거품처럼 파산만 남기고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인공지능은 어느 쪽일까요. 울프는 다소 조심스럽게 진짜라는 쪽에 무게를 둡니다. 인류가 인공일반지능(AGI)의 문턱에 닿았는지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사람을 대신해 스스로 일을 처리하는 자율형 모델의 능력만큼은 인상적이며, 앤트로픽(Anthropic) 같은 기업이 실제로 큰 매출 성장을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근거도 듭니다.

엔비디아(Nvidia)의 주가 급등을 닷컴 시절의 시스코(Cisco)에 빗대는 시각이 있으나, 엔비디아는 이익 자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반면 시스코의 순이익은 2000년까지 2년간 겨우 두 배에 그쳤습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는 인공지능이 이미 미국 실질 국내총생산(GDP)에 적지 않게 보태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투자 열기가 식으면 지금의 실적이 그대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를 달면서도, 그는 인공지능이 단순한 거품은 아니라고 결론짓습니다. 실제로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Alphabet)은 인공지능 기반 시설 투자를 위해 최대 800억 달러(약 120조 원)에 이르는 주식 발행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축복과 재앙, 두 갈래의 목록

울프는 인공지능 대화 프로그램 챗지피티(ChatGPT)의 도움까지 받아 축복과 재앙의 목록을 나란히 정리합니다. 축복 쪽에는 더 나은 의료와 과학의 가속, 생산성 향상, 누구에게나 열린 교육, 기후 대응, 번역과 음성 인식을 통한 접근성 개선 등이 오릅니다. 반대편 재앙 쪽에는 인간이 통제력과 책임을 잃을 위험, 테러에 악용될 신무기, 대규모 실업, 소수에게 쏠리는 권력, 대중 감시와 여론 조작, 객관성을 가장한 편견의 고착 등이 늘어섭니다. 어느 쪽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 두 목록을 앞에 두고 울프는 몇 가지 결론에 이릅니다. 인공지능은 여러 산업에 두루 쓰이는 범용기술을 넘어 인류의 존립에 관한 문제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기업과 국가 사이의 경쟁에 이미 불이 붙어 축복을 향한 경쟁과 재앙을 부르는 경쟁이 동시에 벌어지리라는 것입니다. 핵무기 확산을 막아 온 통제나 신약을 까다롭게 심사하는 규제도 이번에는 본보기가 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인공지능은 국가만의 것도 아니고 한 종류로 묶이지도 않는, 쓰임새가 매우 다양한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기술은 끝내 사람을 위해 존재

그는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을 곧 진보로 여기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하며, 참된 진보란 안전과 자유, 정당성이라는 조건 안에서 사람이 잘 살아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교황 레오 14세(Pope Leo XIV)가 2026년 5월 인공지능을 다룬 첫 회칙 마니피카 후마니타스(Magnifica Humanitas, 위대한 인류)에서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을 호소한 대목도 같은 맥락에 놓입니다.

기술은 끝내 사람을 위해 존재합니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쓸지 정하는 주인은 기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며, 진보의 잣대는 속도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공동의 선이어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분별 있게 받아들이되 질서와 안전이라는 오래된 가치를 함께 지켜 가는 일, 그것이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균형일 것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